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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위아 HOW WE ARE Jul 06. 2016

0. 생과 생이 만나 파생

책 이야기가 없는 독후감

독후감 숙제는 익숙했다. 우선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펼친다. 마지막 페이지라기보다는 '해설', '추천사' 또는 초등 고학년 대상의 문학전집류 일부에는 대놓고 '독후감상문'이라는 이름으로 실린 글을 말한다. 그것은 마치 '해피캠퍼스' 같은 것이어서 똑같이 따라 썼다간 숙제를 안 한 것만 못했다. 베껴 쓸 부분을 따로 표시해둔 후, 각 문장 안에서 주어와 목적어 혹은 부사 등의 자리를 주도면밀하게 바꿨다. 서술어는 대체 가능한 유의어로 바꿨고, 글의 흐름이 크게 깨어지지 않는 선에서 문장의 순서도 바꿨다. 그리고 문단과 문단 사이, 대개의 경우 2-3 문단 사이와 4-5 문단 사이에, 책등을 왼손으로 부여잡고 책배를 오른손 엄지로 쭉 훑다가 눈에 들어온 문장을 발췌하여 인용한다. 분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인용문이 길수록 좋지만 또 너무 길면 성의 없어 보이니까 적당한 길이의 문장이 서너 개 이어진 부분으로 골라야 한다. 생각보다 공이 드는 작업이었으며 교사들은 때마다 최우수상, 우수상, 가끔은 섭섭하게 장려상 등으로 나의 '바꿔치기' 작업에 대한 격려를 보냈다. 아, 방금 쓴 문장은 너무 재수 없었다. 베껴 쓴 독후감으로 뻔뻔하게 상도 자주 받았다는 말이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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