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 필요
제가 예전에 많이 쓰던 말이 있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면서부터 저는 전통적인 스승이나 멘토에게 배우기보다는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친절하게 시범을 보이고 알려주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기 바빴지, 울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울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상대를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않고 모르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장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두리안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두리안의 맛을 설명하는 것처럼, 이해라는 것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두리안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냄새가 안 좋은 과일이라는 인식이 더 강할 테니까요. 맛이라는 것도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것이 아니듯이, 이해도 그렇더군요.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힘들겠다" 정도의 공감만 할 뿐, 직접적으로 제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의 공감보다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같은 경험을 통해 전하는 위로가 더 큰 치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벽을 세우는 일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추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리 추운 날씨의 좋음을 설명해도, 추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상황 자체를 싫어할 테니까요.
가끔은 이해가 아닌, 그냥 인정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생각이 오히려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큰 이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결국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단순히 "그럴 수 있겠구나, 저 사람은 이걸 좋아하는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큰 위로가 되고, 나 자신에게도 더 큰 평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더 나은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진정한 이해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