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학부모 노릇하기
Lunar New Year을 앞둔 지지난 주,
다민이 프리스쿨의 중국계 엄마가 아이디어를 낸다.
“내가 첫째 프리스쿨 다닐 때 이런 걸 해봤는데 같이 준비해 볼래?”
곧이어 단톡방(아, 물론 카톡이 아닌 What’s App)이 만들어졌고, 각자 준비할 재료 및 Working day에 할 일들을 나눴다. 준비를 하다 보니 문득 주 1회 일하러 오는 김에 편하게 하는 거긴 하지만, 내가 너무 다민이 프리스쿨에서만 volunteer를 하나 싶었다.
게다가 최근 몇 차례 주원이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엄마, 내 친구 엄마 아빠들은 학교에서 일하는데 엄마도 하면 안 돼?”
이쯤에서 한 마디 보태자면, 미국 학교들은 공립이나 사립이나 부모의 참여를 정말 많이 요구한다. 학교로 부모들을 초대하는 행사들(많은 경우, fund raising과 연계되는데 공립에서도 한다는 게 특이점이다)도 많지만, 수시때때로 각종 기부와 봉사(volunteer)를 요청 혹은 요구한다.
일 년에 한 번 총회가 있을 때나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 때문에 학년 초만 되면 ‘총회에 갈 때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요?’ 류의 글이 맘카페에 쇄도하는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학부모에게 아이 학교는 가끔 가는 어렵고 불편한 곳이 아닌 다람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하는 제2의 집 같은 곳이랄까…
아무튼 그런 ‘부모 참여형’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단 나는 낯선 곳에 가거나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I형 인간이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고 popular 한 아들에게 영어도 잘 못하는 지질한 엄마가 괜히 누가 될까 우려되어
이때까지 주원이 학교에는 발걸음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자식이 뭔지... 몇 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이 ‘소심한 내향인’은 ‘적극적인 엄마의 탈’을 쓰고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예전에 학부모 참관 수업에 와보면 답을 아는 게 분명한데 절대 손 들고 발표를 안 해서 웅변학원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돈이 없어서 못 보냈다는데…
이를 지켜보던 남편도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놀라며 “Motivation이 뭐야, 대체?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은 애국심이야, 뜨거운 모성애야?” 놀렸는데 나한테 무슨 애국심이 있겠어. 그저 엄마가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바람을 이뤄주고 싶은 모성애에 주어진 일은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모범생 성실 DNA 한 스푼이지.
선생님에게 ‘괜찮다면 내가 친구들에게 Lunar New Year을 소개해도 될까? 책도 읽고 같이 게임도 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메일을 보내고, 사부작사부작 PPT 자료를 만들고, 색종이와 간단한 상품까지 준비한 끝에 바로 어제, 나의 ‘한국의 Lunar New Year 소개하기’ 프로젝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게 뭐라고 발발 떨며 긴장했던 프로젝트를 마친 어젯밤,
맥주 한 캔을 따는 대신 내가 했던 일은 바로
<주원이 친구 22명과 다민이 친구 22에게 나눠줄 44개의 Valentine’s day 선물 준비하기>!!
미국 학부모, 이거 난이도 뭔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