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영 Nov 19. 2024

[이민일기] 어디에 사는지 < 누구와 사는지

미국 이민 2주년 소회

며칠 전은 우리 가족이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지 만 2년 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일찍 자기 때문에 웬만하면 저녁 외식은 안 하는데 그냥 넘어가기도 아쉽고 마침 금요일이길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칵테일과 주스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동안 수고했고, 잘 지내줘서 고맙다”하니 우리 집 장꾸 다민이가 “엄마가 더 잘했지~”란다. 참 감사한 순간들이다.




친구와 지인들은 종종 묻는다.


미국에서 사는 거 어때? 일 년 살기 추천해?


미국에서 살아보기. 직접 살아본 사람 빼고는 누구나 한 번쯤 꿔보는 꿈 아닐까? 나의 꿈이기도 했고, 몹시 막연했던 꿈이 어쩌다 보니 현실이 되어 살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와서 2년을 살아보니 이민이든 한 달 살기든 일 년 살기든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 이주와 정착, 체류 과정에서 깨지는 비용도 어마어마할뿐더러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것처럼 근래 미국 물가는 미쳤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파견이나 연수라면 모를까 미국에서의 삶을 맛본다 혹은 경험을 쌓는다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이유로 선택하기에 1-2년이라는 시간은 짧고 비싸다. 특히 원하는 게 아이의 영어실력 증진이라면 한국의 학원만큼 가성비가 좋은 곳은 없기 때문에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파견이나 연수, 즉 남의 돈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잡지 않을 이유는 없다.



너는 어때? 만족해?


어디선가 이민을 오면 처음 3년은 좋은 점만 보이고 그 이후에는 나쁜 점만 보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고작 만 2년을 채운 신입이라서 그럴 수 있지만, 지금까지 나(와 우리 가족)의 미국 생활은 꽤 만족스럽다.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없는 이역만리 타지에서의 삶은 분명 외롭다. 시차도 그렇지만, 환경이 다르고 사는 게 바쁘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고 자연스럽게 연락의 빈도도 줄어든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슬프지만 당연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낯선 문화와 언어 장벽 때문인지, 내향형 인간의 특성 탓인지 그게 또 쉽지가 않다. 그 외에도 손에 거의 물 한 방울 안 묻히던 삶은 손을 물에 반쯤 담그고 사는 삶이 되었고, 캘린더는 각종 아이들 일정으로 가득 차 때때로 나의 사회적 자아의 존재를 위협한다.


그럼에도 내가 미국 생활에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십 년 넘게 엘에이에 살고 있는 친구조차 지겹지 않다고 말하는 환상적인 날씨다. ‘고작 날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살아보니, 아니 살면 살수록 날씨가 중요하더라. 그림같이 파랗고 맑은 하늘, 햇볕이 뜨거워도 그늘에 들어가는 순간 쾌청함이 느껴지는 낮은 습도, 사시사철 바깥활동에 제약이 없는 적당한 기온,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엘에이의 날씨다.


아이들의 교육도 나의 만족감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한국 나이로 5세와 8세, 절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 없는, 받아서는 안 되는 어린아이들이지만 어디 현실이 그러한가? 거의 태어나자마자 사교육에 노출된 아이들이 5살이면 각종 레벨테스트를 받기 시작하고 오죽하면 ‘7세 고시’라는 말이 생겼다는 한국의 현 세태는 들을 때마다 경악스럽다. 나도 한국에 있었다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대단한 소신을 가지고 다른 길을 걷지 못했을 거라는 걸 알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더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비록 몇 년째 파닉스를 하고 또 하고, 여전히 일의 자리 숫자 덧셈을 하고 있지만, 허구헌 날 망아지처럼 뛰어다니거나 그리고 오리고 붙여대지만, 배우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몸과 마음이 골고루 천천히 성장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최근에는 특히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약간의 무모함과 엄청난 용기로 나의 막연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것부터 시작해 취향도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하는 인생 베프 덕분에 나의 타지 생활이 덜 외로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 사는지 보다 누구와 사는지가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하고?

작가의 이전글 [이민일기] 엄마의 학교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