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걸 어쩌냐구요
첫째 임신을 확인한 순간을 기준으로 엄마가 된 지 만 7년을 향해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날들이지만, 역시 나는 ‘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을 그만큼 자주 한다.
누가 육아를 적성으로 하나
적성을 운운하는 것부터 배부른 소리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아이를 낳았으면서 무책임한 소리, 죄받을 소리를 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백 퍼센트 자발적인 선택이었을까?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고, 취직 후에는 결혼을, 결혼하면 출산을, 첫째 다음엔 둘째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압박이 없었다고 할 수 있나? 그 압박에 저항하지 않고 ‘나는 아기가 예뻐. 좋아’라며 덥석 아이를 낳은 나만 그저 바보 똥멍충이었나?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특히 여자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알려줄 책임은 아무에게도 없었나?
대놓고 나에게 아이를 가지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건 결혼하자마자 피임 없이 임신을 계획했고, 반년도 채 안 돼서 임신을 했기 때문이지 않나?
이유와 배경이 어찌 되었건 나는 아이를 낳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을 가슴 깊이 이해하면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며,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도 주어진 책임을 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되게 힘든 일이고, 생산 인구를 출산함으로써 이 사회를 지속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대의라면 모를까 인간이 태어나서 꼭 이 짓(?)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혹자는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꼭 어른이 되어야 하나? 글쎄…
무엇보다 힘든 건 자유가 없다는 거다.
먹을 자유: 임신 기간 술, 커피부터 시작된 먹을 자유의 제한은 모유 수유 기간까지도 계속된다. 심지어 수유를 하는 동안은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 그 이후에는 자유로우냐? 참을성 없는 아기 상전님들 덕분에 1시간 반 이상 코스 요리가 나오는 파인 다이닝도 안 되고, 날 것을 못 드시기 때문에 오마카세도 안 되고, 불은 위험하고 연기는 해로우니 고기 굽는 집도 안 된다. 외식 말고 집에서 먹는 건 괜찮지 않으냐고? 한 숟가락씩 떠 먹이고, 그 와중에 흘리고 손에 묻힌 거 치우고 하다 보면 정작 내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해가 갈수록 나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맛만 오롯이 즐기는 식사는 아이들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수면의 자유: 두 아이 모두 늦지 않게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일찌감치 분리 수면에도 성공했다. 첫째가 몇 달에 한 번 주기로 자다가 오긴 했지만,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만하면 양반인 편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제 딴에도 변화에 적응하느라 힘든 건지 미국으로 넘어올 무렵부터 밤마다 안방에 오더니 장장 10개월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함께 눈을 뜨는 사이가 됐다. 그뿐인가? 두 녀석 모두 어찌나 새벽형 인간인지, 7시 넘어까지 잔 일이 손에 꼽힐 지경이라 원 없이 늘어지게 자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아이들과 외출할 때면 언제 안아 달라고 매달릴지 모르기 때문에 흰색 옷이나 짧은 옷도 못 입고, 각종 물과 간식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작은 가방도 안 된다. 친구랑 약속 한 번을 잡을래도 시간 맞춰 픽업하기 위한 동선 체크가 필수, 저녁 약속은 남편이 대신 보초를 설 수 있는 토요일만 가능, 운동 한 번을 가려고 해도 내 컨디션, 수업이나 선생님에 대한 선호 따위는 고려할 수도 없고, 아이들이 기관에 가 있거나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 그날이다. 일을 하던 시절에는 할 일도 많고 좀 더 진득하니 하면 뭐가 나올 것 같은데 마음껏 야근할 수 없는 처지가 한탄스럽기도 했다.
자유만큼이나 자율이 중요한 나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 통제하고 절제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같이 사는 남편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다’고 말할 정도니 알만 하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특성 역시 육아와는 참 상극이라는 생각을 한다. 육아만큼 내 원칙이 통하지 않고 통제가 어려운 일이 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나의 분신이 아닌 아예 다른 새로운 인격체를 키우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진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이 존재를 위해 내가 희생하고 감수해야 할 것은 한도 끝도 없는데 세 살, 네 살 커가면서 자아가 생기고 고집을 부린다면? 와우… 할말하않, 여기까지 하겠다.
세 살, 다섯 살(한국 나이-이제는 없어졌지만-로 미운 네 살, 미친 일곱 살이라고 불리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매일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깜찍한 말과 행동, 심쿵을 유발하는 사랑 고백 덕분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뛰어다니고 서로 싸우고 울고 불고 하는 바람에 속에서 천불이 나기를 반복한다.
여기가 직장이고 얘들이 내 상사였다면 진작 때려치웠을 거라고, 종종 남편에게도 하는 말이지만 백 퍼센트 농담은 아니다. 하지만 여긴 직장도 아니고, 얘들은 내 상사가 아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 어쩌겠나? 육아라는 업이 내 적성에는 안 맞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난 하루를 보낸다.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
사실은 이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이 순간들을 기록하리라 결심했고, 매거진을 발행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굉장히 시니컬하고 네거티브한 글이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쓸까 말까, 나만의 일기장에 간직할까 고민도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엄마의 글을 보면 상처를 받진 않을까? 그렇지만 이게 서른일곱 살의 내가 가진 솔직한 생각이고 기분이니까, 이런 마음이라고 해서 아이들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하거나 거짓인 건 아니고 이 둘은 완전 별개니까, 그냥 쓰기로 한다. 엄마도 사람이고, 너희들을 키우면서 행복한 순간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때론 숨 막히고 힘에 부치기도 했고, 엄마로서의 자아와 나의 자아가 충돌하면서 고민하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하면서 살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인정이 아닌 이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