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를 낳고부터 경미한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고생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신생아인 솔이를 돌볼 때는 해 질 녘만 되면 울었다. 아침부터 엄마가 집에 와서 함께 솔이를 돌봐주시고, 고생하는 엄마가 싫어서 오후 4시면 집에 돌아가시라고 했었는데 그 시간부터 남편이 올 때까지 나는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었다. 솔이가 자도 울고, 놀아도 울고, 울어도 같이 울었었다. 그때는 내 품에 내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나 혼자만 느껴진 기분. 어릴 때 낮잠을 자다 깼을 때 집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 황망하고, 상황 파악도 되지 않고 그저 혼자라는 느낌이 가득했달까.
처음 해보는 육아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아이와 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지난하고 힘들어서 그저 무기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솔이가 진단을 받으면서 내 우울증도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한 달 내내 울었다. 남편을 붙잡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겁난다고 통곡했으며, 그렇게 무너졌다. 그리고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세상 모든 걱정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고, 솔이의 미래가 염려되고, 그래서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도 늘 먹구름이었다. 한 시간도 잘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다. 낮에는 하루 종일 쫓기는 사람처럼 전전긍긍했다. 누가 내 심장을 주먹으로 움켜쥐고 놔주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말 그대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남편은 정신의학과에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나에게 병원에 가보길 권했지만 나는 내 발로 병원에 찾아갈 힘도 없었고, 의사 앞에서 나는 내 아들이 느리다고 진단을 받아서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도 내가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나 몰래 근처 정신의학과에 예약을 잡아두고, 미리 가서 설문지를 받아왔다. 따뜻하고 좋은 병원이라고, 한 번 가보라고.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나는 등에 떠밀려 병원을 찾았고, 그래서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됐다.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엄청난 경계태세였다. 나는 잠을 잘 수 없으니 잠을 자는 약이 필요하고, 지금의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상담은 필요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내 속 이야기를 전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좋은 분이셨다. 나의 상태는 그저 뇌에 한 부분이 감기에 걸린 것뿐이고, 평소의 뇌라면 지금의 여러 상황에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현재 당신의 뇌는 감기에 걸렸으니 우울증이 온 거라고. 그러니 약을 열심히 챙겨 먹으면 감기처럼 낫게 될 거라고. 당신을 힘들 게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은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또 많이 울었고, 아주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우울증 환자이지만 약을 점차 줄여나가는 중이고, 그리고 약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의식적으로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 두 가지 중 하나는 독서(우울증 진단을 받고부터 책 읽는 양이 아주 많이 늘었다), 그리고 자수. 자수는 아이를 낳기 전에 문화 센터에서 잠깐 배운 3개월이 전부였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고부터는 원데이 클래스도 나가고, 유튜브도 보고, 자수 모임도 나가고 정말이지 자수에 진심이 되었다. (언젠가 자수에 대해서도 적어내고 싶다)
아직도 나는 자주 넘어지고, 그리고 때때로 무너지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언제까지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할지, 언제 또 무너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우울증의 답을 솔이가 아닌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우울증은 평생을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내 우울을 잘 어르고 달래서 끝까지 함께 가볼 생각이다. 욕심내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