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망치지 않는 방법
엄마와 아빠의 말소리,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까지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어떠한 주제로 나눴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지 않으면 모를 그저 그런 대화들로 어제의 밤과 새벽이 채워졌고
그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학교를 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휴일이었으면 평온하게 받아들였을 모든 것이 짜증으로 다가온다.
학교를 가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지만 한편으론 부모님을 위한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의 닦달이 아니라면 오늘 하루 정도는 공부를 안 해도 괜찮았을 텐데.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서두르라며 씻고 밥 먹기를 재촉한다.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에 잔뜩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나 : 나 밥 안 먹어.
엄마 : 왜, 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 밥 다 차려놨어.
나 : 내가 차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피곤해. 안 먹어.
이 두 마디는 최고의 하루를 최악의 그것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그리고 동시에 답답한 얼굴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표정을 의식적으로 뒤로한 채 씻으러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부터 망가졌다.
등교 후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집을 나설 때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사과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핸드폰으로 눈을 옮겨 학교와 교실의 무거운 공기가 주는 중압감을 잊어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핸드폰으로 잊길 바랐던 그것들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행동 면면에 그것들이 더 많이 묻어나,
이제는 핸드폰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럴 무렵 종이 울린다. 첫 수업이다. 1교시의 대부분은 졸음과 함께다.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졸지 마. 정신 차리고. 너무 졸리면 뒤로 나가 서서 들어."
고개를 저으며 깰 수 있다는 의지를 표시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몽롱해진다.
하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뒤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버텨보자.
다시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엔 선생님의 시선이 나와 살짝 마주치고 지나간다.
아마도 내가 찰나의 순간 졸아서 선생님이 지적하기에도 애매한 순간이었나 보다.
아니면 졸았는지 모르셨을지도?
이러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슬슬 버티고 있는 이 상황이 고통스럽다.
왜 이러고 있는지 짜증이 몰려온다.
아슬아슬 졸음과 짜증의 경계를 넘나들 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웅록 뒤로 나가서 수업 들어."
"예."
터덜터덜 뒤로 나간다. 왜 나한테만? 문득 예민함이 고개를 든다. 쟤도 자는데.
나의 기분을 선생님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반항의 선을 넘지 않는 감정을 얼굴에 담아본다.
일어서니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이다.
쉬는 시간만 바라보며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다. 쉬는 시간에 푹 자야지.
그런데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친구와 이것저것 또 다른 친구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달아났다.
2교시가 걱정되기는 한다만 2교시는 또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라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며 몸이 조금씩 깨어남을 느낀다.
쉬는 시간에 마음을 다잡으며 밀린 숙제를 하려고 책을 편다.
그런데 평소에 잘난 척이 심하던 수범이가 괜한 장난으로 시비를 건다.
본인은 답을 다 알고 있다며 정답을 외친다.
그 모습이 꽤나 불쾌하다. 한 차례 감정을 쏟아내니 친구도 그런 걸로 짜증을 내냐며 툴툴댄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먼저 시작한 놈이 왜 툴툴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숙제는 다음으로 미룬다.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국어 문제집을 펼친다.
지난 번 학원 수업 때 배웠던 내용이지만 복습을 하지 않아서인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 부분이 서정적이고 이 부분은 격정적이라는데 두루뭉술한 감정은 알겠으나 정확히 와닿지는 않는다.
답이 틀리고 해설지를 읽어도 꼭 들어맞는 퍼즐을 맞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적당한 이해.
완벽한 이해를 하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만 얻어지는 건 짜증뿐이요 잃는 건 집중력이었다.
답을 낼 수 있는 몇 문제 풀고 숙제를 마무리한다.
나머지는 학원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되겠지라며 책을 덮는다.
숙제를 조금은 했다는 안도감이 들지만 남아있는 찜찜함은 어쩔 수 없다.
아침까지도 맑았던 하늘이 오후가 되면서 기분처럼 우중충하다.
코 끝에 다가온 흙냄새가 쏟아질 비를 예견한다.
역시나. 비다.
학원으로 향하는 길. 우산도 없이 비 오는 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왜인지 뛰기는 싫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가 살에 쩌억 달라붙는데, 이 느낌은 정말이지 몇 번이고 적응이 안된다.
습하고 눅눅한 교실에 들어서고 수업이 시작함과 동시에 선생님이 숙제검사를 하신다.
나름 끄적여놓긴 했으나 숙제를 했다고 하기엔 민망하다.
선생님도 그걸 아는지 제대로 숙제한 것이 맞느냐고 되물어보신다.
아는 문제는 다 풀었다며 둘러댄다.
질문을 받으시고 다음 진도를 나가시는데 수업이 재미가 없다.
이해가 되지 않아 시간을 조금 들여서 이해를 하려다 보면 이미 다른 주제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주제 또한 앞부분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하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에 울컥하다가 이내 그마저도 사그라든다.
어느새 학원 수업이 끝났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니 자극적인 음식이 생각난다.
적당히 맛있는 라면을 끓여먹고 씻고 온다.
학원에서 해방된 친구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친구의 연애 이야기, 나도 너도 모두 공부를 안한 이야기, 친구와 다툰 이야기 등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피로감도 사라진다. 내일의 숙제를 펴놓은 채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한다.
대화를 하던 친구들의 답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시침이 숫자 3에 기대어있다.
슬슬 자고 싶은 마음이 생겨 펼쳐진 책을 그대로 둔 채 침대로 향한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유튜브 영상을 하나 시청하며 스르르 잠에 든다.
이 글을 보고 어떤 게 느껴지시나요?
김웅록은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김웅록은 특별한 환경에 놓여 공부를 할 수 없었나요?
하필 엄마랑 다투었고, 하필 친구랑도 언쟁이 있었으며, 하필 비도 왔고.
이러한 일이 하루에 발생한 것이 운수가 없었던 특별한 그날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선생님이 우리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습니다.
바깥의 원인들로 인해 우리 친구들이 공부를 못하고
나아가 방해받은 그 상황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무엇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상황에 의미를 부여한 들 과거가 바뀌지 않습니다.
되려 스트레스로 현재를 채워 집중력을 엄한 곳에 소비합니다.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고 있는 거죠.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포기한다니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요.
우리 학생들의 학창 시절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삶을 풍요로 이 하는데 중요하다는 점은 선생님도 공감합니다. 진심으로요.
허나 과거에 얽매임이 지나쳐 현재를 잃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보며 이 얘기 또한 들려주고 싶었어요.
설령 특별히 운수가 없었던 날일지라도 그저 그런 날임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며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세요. 그러면 자연스레 얽혔던 과거들이 스르르 풀리는 경험도 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