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가진 내재적 문제와 나의 의견
오랜만입니다. 당최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조금은 깊이가 있을까를 고민하며 쉽사리 적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재밌는 주제가 톡방에서 나온 겸 글로 적습니다.
톡방에서는 수능에서 어려운 지문이 나오는 것이 옳은가로 시작하여 수능의 제도는 올바른가로 이어졌습니다.
저에게도 꽤나 치열한 문제여서 생각도 정리할 겸 글로 표현해 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격 및 목적을
-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
- 고등 교육에 맞는 수준의 교육으로 학교교육 정상화
-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인 대입 전형자료 제공
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지문을 이해하는 능력은 대학 수학에 중요합니다. 수험생은 베일에 가려진 시험을 준비하므로 광범위한 텍스트를 모두 공부하는 대신 지문을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새롭거나 어려운 정보를 얻기 위해 강의나 영상로 교육받는 것은 해당 내용을 화자가 쉽게 전달해 준다는 장점이 있으나 텍스트를 통한 배움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과 정보 접근의 용이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 위 능력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현 수학능력시험이 주최기관인 평가원이 제시한 또 다른 목적에 맞게 시행이 되는지는 의문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기관이 명시한 그것이 스스로를 옥죄는 내재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고등 교육에 맞는 수준의 교육으로 학교교육을 정상화한다고 되어있는데 위에 저 지문, 나아가서 현 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는 타과목 킬러문항들이 고등 교육 수준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언어영역에 출제되는 비문학 지문은 친절히 쓰여 글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면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 수 있게끔 정의를 서술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수능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시험이었다면 평가원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한된 시간에 어려운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표면적'인 이해와 정교한 패턴화 작업에 몰두를 하죠. 이 패턴화 작업은 빠른 문제풀이가 가능한 것이 핵심이고 이성적인 논리를 직관적인 사고로 바꾸는 작업이기에 깊은 사고력과 궤를 같이하기는 어렵습니다.
과연 양질의 텍스트를 시간을 들여 깊이 해석하는 능력을 과연 표면적 이해와 패턴화 작업으로 기를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 깊이 이해해야 하는 어려운 텍스트를 지문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국어는 제 전공이 아니라 수학을 예로 들겠습니다.
개념이 전제되지 않는 문제풀이는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와 개념으로부터 새롭게 파생되는 정리들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함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통과목, 또는 미적분 최상위 변별을 위한 킬러문항들을 분석해 보면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과 정리들만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심심치 않게 고교교육과정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예가 궁금하시다면 18년도 가형 30번 문항을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상적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풀이가 극악으로 치닫습니다.)
'수능이 어떤 시험인데, 당연히 검토하고 내는 건데 그럴 리가?'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개념을 성실히 사용하여서 풀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시간 내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교육과정을 다소 벗어날지라도 사용가능한 최단 풀이를 교육집단은 연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를 학생들에게 교육하여 시간단축 프로그래밍 즉 패턴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교과서를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아서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하신다면 그 의견에는 동의가 힘듭니다.
개념과 기술적 풀이는 언제나 연속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증명이 가능할 정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패턴화 작업은 킬러문항 풀이에 필수입니다.
어떤 것이 상황이 올 지 모르니 배틀그라운드에서 최대한 많은 무기를 확보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우리 학생들은 공부합니다.
2.
그렇다면 평가원이 가진 내재적 문제는 무엇일까요?
평가원은 수능을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인 대입 전형자료로 제공한다고 천명합니다.
모든 학생들은 좋은 대학, 좋은 과에 입학하기를 원하므로 '대입 전형자료 수능'은 그 자체로 공정성 있고 객관성 있는 '변별'을 내포해야 합니다.
고도의 패턴화 작업에 능숙한 사교육 시스템을 극복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서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미처 생각해 내기 어려운 사고의 길을 개척하는 문제를 출제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몇몇 문제들이 과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전반적인 문항의 구성에 문제가 없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제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 문제에 대한 숙고를 미리 포기하게 만드는 현상을 초래하여 수능의 본래 목적을 잃게 만듭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미리 출제되었던 선례로 인해 불안감이 정초 되었고, 따라서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모르니 실제 대학 수학 시 전공과목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미리 패턴화 시켜 인적, 시간적 낭비가 발생되고 고등 교육의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목적 또한 잃게 됩니다.
평가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시 줄 세우기라는 목적이 그 스스로의 존재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하자면 '평가원이 명시한 수능의 목적에 맞게 고교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한 대학 수학 능력을 지닌 보통의 학생은 평가원이 출제한 시험에서 손해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수능이 가진 내재적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수능은 사라져야 하는, 대체되어야만 하는 제도인가?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능은 현재로선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이고 최선의 것이라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칸트철학의 백종현 선생님께서 칸트를 비판하는 많은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칸트가 만들어 놓은 성에 흠집을 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와 같은 성을 짓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저 또한 수능이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수능이라는 성에 흠집을 내며 그것이 가진 존재 당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그를 대체할 더 나은 입시제도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보입니다.
그 많은 제도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견고한 성으로 자리매김한 시험으로써 수능은 필요가 없어져 허물어야 하는 폐성이 아니라 더 나은 성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유지보수를 통해 안보를 수호해야 하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위의 주제에는 정확히 부합하지 않지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추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우리는 성적의 경쟁이 심히 과열되어 수능이 가진 본래의 순수한 목적이 먹구름 속에 가려지는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대학이 계층을 구분 짓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뿌리 깊은 인식과 일류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이 과도하게 사회의 정의를 정의하고 이끌어가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축적 됐을 때, 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의 축적은 수능 제도의 개편과 어우러져 최선의 교육을 만들 양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비옥한 땅 없는 씨앗은 종류를 바꾸어도 싹이 틔지 않습니다.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을 이어나가는 우리 많은 분들이 사회적 자본 형성에 필요한 계몽가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진지한 논의들은 교육을 숙고하게 만들고, 이는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금 논의의 중심에 있는 고교 학생들은 우리들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가장 가성비 있는 계몽이라고 봅니다.
교육업계에 종사하는 저도 올바른 교육을 위한 계몽환경 조성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넘치는 지혜와 평화가 가득한 그날을 기대하며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