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줄 수 있고, 주고 싶은
유일한, 모든 것

by 김호연

오랜만입니다.

제 글을 기다렸을 누군가를 기대하면서 인사말을 적어봅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시작한 글쓰기여서 인지

최선을 다해 써놓은 몇 자의 글이 저의 얕은 생각의 깊이를 여실히 보여주더군요.


깊이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에

책 한 권을 붙잡아 한 주간 씨름했지만 책이 어려웠던 탓에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고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책이 아닌 곳에서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때문에 조금 용기를 내어보기로 합니다.


오랜, 반갑기도 따갑기도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대화를 하던 도중 출산율, 그리고 제 아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가 "야, 요새 출산율 장난 아니더라. 근데 너 아이가 나중에 힘든 사회를 헤쳐나가야 할 것 같지 않냐? 어때? 걱정 안 돼?"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긴 저의 생각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보려 합니다.)


"나는 아이를 낳는 것, 아니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행복을 담보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지독한 낙관주의에 빠져 반성 없이 생명은 행복이라고 단정 지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이는 태어나면 숨조차 스스로 쉬지 못하는 가녀린 몸으로 태어나서 호흡, 수유, 수면 등 모든 활동에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게 돼. 엄마의 뱃속을 나서면서부터 생존을 위한 전쟁이 아이에게 시작되는 거지. 트림 한 번, 방귀 한 번에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해야 하고, 잠조차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게다가 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울음뿐이라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기도 힘들어. 점점 커가면서도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남들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하며,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규칙 속에 나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야 해. 진짜 행복한 걸까?"


친구는 본인도 인생을 행복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고통에 아이의 선택권은 없었다는 게 중요하지.

아이는 본인이 태어나고 싶다는 결정권을 갖지 못한 채 삶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숙명에 놓이게 돼."


그리고 저는 자기반성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나를 정말 괴롭히는 건 이거야. 나는 이 아이를 보면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거.

그렇다면 아이를 낳는 선택은 나를 위한 걸까? 아이를 위한 걸까?

나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비판해 보았지. 비참하게도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더라고.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무한한 이기심.

깊게 고민했다면 쉽게 하지 못했을 결정이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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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얘기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더 생각해 봤지. 나를 돌이켜 봤어.

나는 인생이 고통스러웠는가? 맞는 것 같아.

그렇다면 인생은 살만하지 않았는가? 행복하지 않았는가? 그건 아니더라고.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해. 고통스럽다는 것이 곧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더라고.

그런데 내가 행복하다는 건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야.

나에게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의식이 있어.

그리고 이 의식으로 발현된 나의 의지를 통해 내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가지.

이걸 나는 진정한 자유라고 느껴. 그리고 이것이 나의 행복이야.

그래서 난 나의 아들에게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그것을 통해 본인의 자유의지로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그것이 진정한 자유,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구나.'라고 느끼게끔 해줄 거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어.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하지 않게 되었어."


진지하게 제 얘기를 들은 친구가 숨을 고른 뒤 조금은 가벼워지자는 듯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 너 아들이 네가 원하지 않는 대로, 예를 들어 학생 때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 괜찮아?"


"음, 담배를 피우고자 하는 것이 본인의 의지로 한 행동이라면 안타깝지만 나는 존중할 거야.

그렇지만 나는 의지대로 산다는 것이 곧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치열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해.

이 고민에는 의지로 행동한 후 그 행동이 나의 세계를 변화시키며

변화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까지가 포함되어야 해.

결과적으로 나는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범법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

라고 답변해 줬습니다. 그리고는 서로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듯 말없이 빗 속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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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글에 비해 더욱 친숙하게 다가간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대화에서 드러났지만

저는 저의 아들에게 제가 가진 유일한, 그리고 모든 것인 '사유하여 의지대로 사는 삶'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미생인 제가 성장 속에 아들을 잘 인도할 수 있는 현재의 최선,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래에 보다 더 지혜로운 방법이 있을지 책, 대화, 강의를 통해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방법이 있다면 댓글에 선배의 지혜를 나눠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글쓰기는 처음, 중간, 끝 모두 어렵네요. 어설픈 마무리로 글에 방점을 찍는 것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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