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기분 좋은 후기는 없다.

수학 공부법

by 김호연

유난히 지친 어느 날 (그래서 더 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숨을 고르며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제자들의 대학 생활을 보고 있자니 부럽기도 하고,

나의 그 시절은 어땠는지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숱한 실수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란색 종이에 빽빽이 적힌 미적분 공식들.

'대학에서 미적분도 열심히 공부하네 녀석.'

숱한 공스타그램이겠지하며 아래에 남긴 글을 읽었습니다.


도현인스타.png

너무 놀랐습니다. 제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죠.

예전에 고백한 적 있듯이 제 첫해 강의는 너무 원론적이었고 딱딱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덜어내고 강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본질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니 바꿀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수학의 본질은 정확한 논리에 따른 올바른 추론입니다.

수학은 숫자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납득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종의 놀이와 같습니다.

수라는 언어의 기초가 되는 공리를 재료로 연역적인 추론(논리, 논증)을 쌓아 수식, 도형 등으로 설명의 대상이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문제를 푸는 과정은 출제자와 내가 동일한 규칙 속에 있음을 인지하고 그동안 차근차근 익혀왔던 모든 개념들을 사용하여 올바른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점수를 획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출제자가 의도적으로 숨긴 규칙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규칙은 알고 있으나 그것이 바르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미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고리타분한 증명, 원리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수학의 시작이고 모든 고등수학 과정에 필요한 기초체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의 것들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수학 2의 첫 시간의 첫 단원을 굉장히 길게 수업하는 편입니다. 대학과정에서 배우는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극한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극한의 성질을 곧바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후의 과정들은 기계적으로 반복된 풀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적 풀이는 수학 공부에 악순환을 만듭니다.

반면에 기계적 풀이를 넘어서 개념의 원리를 깨닫고 이를 바르게 적용한다면 일반적인 학생들의 오해와는 달리 수학이 그 어떤 과목보다도 공부 효율이 높은 과목임을 알게 됩니다.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문제를 푸는 학생들에겐 약간의 변화가 모두 '다른 유형의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은

문제가 살짝 바뀌더라도 중심 개념은 변하지 않은 것을 알고있으므로 '똑같은 문제'로 인식하게 되죠.

실제로 저는 수업에서 문제집에 유형 1, 유형 2 등으로 나누어진 부분을 설명할 때

여러개의 유형이 사실은 하나의 개념에서 파생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하나의 유형처럼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상상 속에서 가지고 있던 체감 난이도, 체감 양의 부담이

실제로는 얼마나 부풀려져 있었는지를 스스로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엄청난 양과 높은 난이도 문제에 대한 압박감에 수학 점수를 높여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학생들 스스로가 '나도 수학을 잘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기며 저절로 수학에 흥미가 붙게 되는 것이죠.

공부의 선순환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이때부터 진짜 공부의 '스노볼'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위대한 첫 발이죠.


인스타그램의 주인공 OO이와의 첫 만남이 고2 수학 2 수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글에서처럼 OO 이는 수학에 흥미가 많지 않았고 그저 점수를 방어하기 위한 소극적인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학 2 첫 시간, 극한의 엄밀성을 최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풀어서 설명하였고

이후에 있던 수업 시간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왜 이렇게 답이 나오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OO 이는 처음에 개념의 이해를 문제에 적용하는 것을 어려워했으나 꾸준히 이해와 적용을 연습했고,

이내 가속도가 붙어 100, 200문제의 숙제도 거뜬히 해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OO 이는 고2 때 제가 내준 숙제 이외에도 문제집 두 세 권을 더 풀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성적이 굉장히 많이 올랐고, 미적분 마지막 시험 때는 높은 등급을 기대하기도 했었습니다.

(성적은 OO 이의 개인 정보이기에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나아가 이 게시글에서 정말 기쁨을 느꼈던 것은

제가 이야기한 수학의 유희를 OO 이가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꼰대임을 자처하며 자주 잔소리를 내뱉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나는 너희들이라는 아주 좋은 토양에 작은 씨앗을 하나씩 심는 중이다.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너희가 어느 순간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그 느낌이 방아쇠가 되어 간절하게 조언을 바라게 될 때

그때에 선생님의 잔소리가 생각나서 뿌려둔 씨앗이 틔는 순간이 생기고

그것이 너희의 인생을 변화시키며 찬란한 꽃, 열매를 한 명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난 이 잔소리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런 학생이 있다면 난 성공한 꼰대이다."

라고 말이죠.


위에 설명드린 것처럼 수학은 기존에 아는 지식이 방사형처럼 뻗어져나가 잘 짜인 퀴즈를 푸는 놀이와 같습니다. 재밌고 흥미롭습니다. 푸는 과정에서 굉장한 몰입을 하기 때문에 과정 자체도 즐겁습니다.

OO 이는 이것을 깨닫고 대학에서도 스스로 수학을 찾아 나서는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얼마나 기특한지요.

그러므로 이 게시물은 저에게 성공한 꼰대를 의미했습니다.

OO 이가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OO 이가 저의 가르침과 잔소리의 씨앗을 틔워 변화를 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게시물이 이토록 제게 먹먹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이유입니다.

내 사랑하는 오랜 제자의 담담한 고백은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줍니다.

학생들에게 더욱 본이 되면서 올바르게 가르치고 행동할 책임감을 느낍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제가 경험하고 얻은 지식과 지혜를 잘 정제된 형태로 제공하며

그들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나의 제자가 되어 최선의 다해준 멋진 OO 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웅록이 제자 OO에게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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