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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Apr 08. 2024

에필로그

다시 시작하기 위한 장비 준비



어느덧 20화다. 이번 글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쓰고 있다. 조금 번잡스럽지만 첫번째 글에서 언급했던 내용, 즉 내가 어떻게 사진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었고 어떻게 이런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를 다시 되짚어보려고 한다.


DSLR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2000년대 중후반, 나도 거름지고 장에 가는 것마냥 캐논 300D를 중고로 구입했다. 그리고 이내 사진의 매력에 푹 빠져 비가오나 눈이오나 카메라를 메고 다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러댔다. 나의 30대는 사진과 함께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하나 둘 키우며,  또 치열한 직장생활에 마음을 빼앗기며, 일별로 만들던 사진 폴더는 어느덧 월별로 바뀌었고, 이제는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카메라를 꺼내게 되었다. 한 번은 최신형 노트북 구매에 마음이 꽂히자, 사진 장비를 처분해서 자금을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결국 카메라와 렌즈를 팔지는 못했다. 이용 빈도가 날로 줄어든다 할지라도 그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기분좋은 추억 같은 것들이 마음속으로부터 몽글몽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마도 카메라 장비와 함께한, 웃고 흥분하고 좌절하고 환호하던 기억들일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던 차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나의 20년 가까이 되는 사진 생활을 따라가보게 되었다.




나는 이 글들을 쓰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최근부터 셔터를 다시 누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옛 사진 파일들을 한 장씩 넘겨보며 그때의 감성이 나를 부르는 것을 느꼈다. 환경적으로 마음놓고 출사를 나갈 수는 없지만 기회있을 때마다 카메라를 챙긴다. 오래도록 어둠 속에 묻혔던 장비들도 바빠졌다.


옛 사진 감성을 되찾기에 가장 적합한 렌즈가 있다. 내가 애장하는 Canon EF 85mm F1.2 Ⅱ이다.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만투'라는 별명이 붙은 렌즈다. 준망원의 초점거리에 환상적인 심도와 보케를 보여주는 이 놈은 단점이 많다. 우선 초점잡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비싸다. 내구성도 낮다. 혹시나 떨어뜨릴 경우 어마어마한 수리비를 각오해야 한다. 경통의 특성상 렌즈 내 먼지 유입이 되는 것은 어느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정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토록 불편한 녀석을 내가 왜 좋아하냐면, 만투는 위 불편들을 훨씬 넘어서는 결과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7, 용인


한때 동일한 85mm에 F값만 1.4로 조금 높이고, 성능과 내구성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한 캐논의 신제품이 나왔다는 소식에 만투를 처분하고 그놈을 들였다. 처음에는 편의성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이것도 하나의 시행착오로서, 내가 사진을 즐기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나는 렌즈 사용의 불편은 언제든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1.2의 F값과 만투 특유의 광학적 특성이 보여주는 결과물의 차이다. 신제품은 아무 걱정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지만 결과물은 한 끝 차이로 만투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원했던 것은 그 한 끝 차이였다. 그것을 위해 나는 사진생활에 몰입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다시 만투를 영입했다. (그 과정에서 중고 사기를 당하는 아픔도 있었다)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신제품으로 나온 (지금은 더이상 신제품이 아니지만) 그 렌즈는 여전히 사진가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고, 중고 시세도 만투보다 높다. 다만 내 기준에서 그것이 만투와 같은 표현력을 보여주는 렌즈는 아니었을 뿐이다.


몇달 전 가족과 함깨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을 때, 해가 내리쬐는 강물을 배경으로 억새를 촬영했다. '역시'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사진생활을 하는 한 이 렌즈를 처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런 말은 매우 위험한데, 이런 말을 한 사람 치고 그 장비를 처분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실도 감안하여 단언을 하고 있다. 이 렌즈는 사진 생활을 끝내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 한다고.


2024, 용인





한편으로는 '편의성'을 고려하는 선택도 했다. 한 달 전 24mm 렌즈를 구매했다. 이것은 꽤 최근 나온 제품이라 그냥 신품으로 구매할까 고민도 했는데 중고가와 갭이 꽤 커서 조금 발품을 팔았다. 공식 명칭은 RF 24mm F1.8 MACRO IS STM 이다.


내 기준에서 24mm의 최강자는 '이사벨'이라 불리는 렌즈였다. 이 녀석도 두 번이나 사고 팔고를 했다. 24mm는 기본적으로 광각에 속한다. 초보자 분들은 사용시 당황할 수 있다. 광각은 기본적으로 어느정도의 왜곡이 발생하여 익숙해지지 않으면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 지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사벨은 광각에 1.4라는 상당히 얕은 심도를 지원한다. 무엇보다 그 조건이 만들어주는 아련한 느낌이 렌즈 특유의 색감과 함께 만들어진다. 이런 감성적인 부분이 좋아서 한때 나는 이 녀석만 들고 다녔다. 비네팅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나는 이런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추가로 비네팅 효과를 더 주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진 않는다)


2015, 다대포


그러나 이사벨도 한 부피와 무게를 하는 렌즈다. 기왕 재개하게 된 취미생활을 불편함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불편한 것은 만투 하나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4mm는 신제품으로 장만하기로 한 것이다. 새로이 들인 렌즈의 최대 장점은 작은 부피와 270g 밖에 하지 않는 무게이다. 엄청난 편의성을 지원한다.


RF 24mm F1.8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되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꽤나 준수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매력에 빠졌다. 이사벨만큼은 아니지만 24mm 특유의 느낌은 가져가면서 화질과 휴대성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니 지금 나에게는 최적의 렌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접사와 손떨림 방지까지 지원하니 적잖이 비싼 가치를 하는 녀석이다.


2024, 용인


2024, 용인
2024, 용인




아무튼 이렇게 나는 사진생활 2막을 열어보려고 애쓰고 있다. 넘치는 열정으로 마구 셔터를 눌러댔던 지난 추억들을 하나 둘씩 넘겨보며, 또 그것을 글로써 정리하며 내린 결론이다.


나름 괜찮다 생각했던 사진들은 개인 블로그에 포트폴리오 형태로 구성했던 적이 있고, 인스타에도 매일 한 장씩 올려보았지만 사진 생활이 시들해지며 휴면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만 해보고 가보지는 못했던 출사지도 가족의 허락을 받아내어 찾아볼 생각이다. (그 중 주산지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 어느정도 기록이 쌓이면 이와 비슷한 연재를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며 개인적으로 공유해보고 싶은 사진들이 많았지만 회별 주제와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 소개하지는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없다. 20편 정도의 글들을 통해 지난 사진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내가 잃어버렸던 감성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돌아보면 20편의 이 글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쓴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는 도중 쳐다본 바깥은 벚꽃이 한창이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그리고 카메라와 함께 나갈 것을 다짐해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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