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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03. 2019

긴 여행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 Scene

여행을 왜 하니?

걷다.

중국 베이징을 걷다.


첫 번째 여행 때처럼 홀연히 떠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 출국일까지 ‘이런 마음으로 떠나도 괜찮을까’ 걱정했다. 직장을 관두고 다시 여행 백수가 됐다는 사실보다, 실처럼 엉켜있는 내 마음의 시작과 끝이 어딘지 몰라 정신이 어수선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풀리길 바라고 있었다.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친구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비틀거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로 향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그때까지 어떤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그리스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 둘 다 피곤했는지 말이 줄어들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지선이가 물었다.

 “넌 여행을 왜 하니?”

 “재밌잖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니까. 넌?”

무미건조한 대답을 했다. 말하고 나서도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찾지 못해 근처 어귀를 서성이는 사람처럼 방황했다. 지선이가 대답했다.

  "난 원래 이렇게 긴 여행을 할 생각이 없었어. 근데 가야겠다.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토끼눈이 된 채,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지선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떼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여행은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지선이는 나를 보며 ‘이 자식이 미쳤나? 내가 뭘 했다고 저리 놀라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도 그냥 지선이 너처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떠나왔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나 봐. 너 대답 듣고 떠나야겠다 굳게 마음먹었던 그날이 떠올라서 눈물이 나네.”

내 마음이 퍼즐처럼 완전히 맞춰진 순간이었다. 지선이의 대답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아무리 평범한 말이라도 적절한 순간이 결합되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명언이 되기도 한다. 위로는 깨닫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감싸고 있었던 불안함이 콩알만 해졌다. 나도 지선이와 같은 마음으로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떠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대기 위해 여러 가지 내가 떠나야 할 이유들을 나열하느라 정작 내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을 먼지 쌓인 채 방치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긴 여행을 떠나는 건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홀가분하지 않았던 건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한다는 거대한 실체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첫날, 지선이가 나에게 떠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다니! 그리고 떠나온 이유에 대해 말해줘서 고마웠다. 이제야 완벽하진 않아도 완전해진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 피곤함을 뒤로하고 흩어져있던 감정들을 일기장에 쏟아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금방 휘발될 것만 같았다. 한 시간 가량 펜을 놓지 않고 지선 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흘겨 적었다. 정체가 불분명했던 기억과 감정의 파편이 한데 모여 완전체가 됐다. 어떠한 일이 들이닥쳐도 이때 마음이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느꼈다. 내 마음을 잘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내 마음 자주 들여다보는 일, 외부의 자극이든 내면의 통찰이든 어떠한 과정을 통해 나를 깨닫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꾹꾹 눌러 담았다. 얼마 될지도 모르는 여행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 씬(Scene)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지 몰랐다. 앞으로 펼쳐질 예측 불가한 일들이 불안하지 않고 비로소 설레기 시작했다.


듣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긴 여행의 시작을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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