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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04. 2019

유치원 선생님이 세계 여행하는 거 처음 봐요

What is your favorite?

 타지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소개 시간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름부터 시작해 국적, 여행은 언제 시작한 것인지, 떠나오기 전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주고받는다. 내게 가장 두려운 건 ‘직업’에 대한 질문이다. 유치원에서 일했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대부분 나에게 이런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오! 역시 잘 어울려. 어쩐지 사진 찍을 때 포즈가 발랄하고, 이야기할 때도 뭔가 유치원 선생님 같아요. 그런 소리 많이 들었죠?”

페루 69호수/태국 치앙마이 버스 안/스페인 알메리아/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을 때 모든 근육을 다 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했던 언행들을 살피게 된다. 유아교육 전공을 하기 전에도 표정이 다양하고 활발한 편에 속했는데, 마치 ‘유치원 교사’ 라서 그런 성격을 가진 것처럼 들린다. 직업에 대한 정형화된 편견이 내 전부를 포박해놓은 기분이 들었다. 옴짝달싹 못하게 유치원 교사라는 틀 안에 갇혀 언행을 조심히 해야 할 것 같고, 나긋나긋하게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내가 조금이라도 과감한 어휘를 사용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선생님이 그래도 돼요?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죠~” 속으로는 어쩌라고, 퇴사도 했고, 지금은 일 안 하는 여행 백수인데, 당신이 뭔데? 외치고 싶지만, 그때마다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아 적당한 웃음으로 넘기기 바빴다. 기존의 다양한 내 역할에서 탈피하고 싶어 떠나온 것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발이나 대충 씻고 잠이나 자고 싶어 진다. 나 또한 살얼음판 걷듯 살금살금 직업이 가진 편견을 지켜내는데 일조한 거나 다름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큰 프레임 안에 갇힘과 동시에 내가 생각하는 프레임 속에 또 갇힌 셈이다. 견고한 얼음판을 깨부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심지어 내 또래의 한국인 여행자는 나에게 “와. 유치원 선생님이 세계 여행하는 거 처음 봐요. 유치원 선생님들은 이런데(여행 인프라가 좋지 않은 곳) 오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아... 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분이 말한 유치원 교사가 어울리는 나라는 어딜까. 해외에 나와서까지 교사라는 옷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걸까.

유치원의 여름과 겨울.

 직업을 공개하고 나면, 사람들은 나를 조호영이라고 기억하지 않고 유치원 교사라고 기억한다. 심지어 A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J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 분은 조호영이고, 유치원에서 일했대. 완전히 잘 어울리지?”라고 말한다. 내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데, 이제 상대방의 머릿속엔 이미 유치원 교사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물론 나 또한 상대방의 이름보다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서울 사는 남자’ ‘일주일 휴가 내서 여행 온 스물일곱 간호사’라는 이미지가 보다 쉽게 각인된다. 관심 없는 사람의 이름은 생각보다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름은 쉽게 듣고 쉽게 잊는다. 웬만큼 상대방이 궁금하지 않은 이상, 이름을 묻지 않는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는 것만큼이나 시간 아까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가끔 대화를 하다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이름을 묻고 휴대폰 메모장에 특징과 함께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묻는다는 건그만큼 앞으로 당신을 조금 알아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김민철 작가님의 모든 요일의 여행. 여행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간격을 좁히는데 어떤 개방적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모든 요일의 여행> 책을 읽게 됐다. 저자는 여행 중에 ‘What is your favorite?’라는 질문을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시간, 자신의 취향을 불러내 신중히 대답하게 하는 실용적인 질문이라 소개했다. 어제 대만에서 온 여행자에게 “What is your favorite?” 질문했고, 그 질문을 시작으로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고민했다. 좋아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도 상대방은 입 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이게 했다. 다양한 질문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가벼운 대답일 때도, 때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 사람은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대답을 기대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What is your  favorite?’는 나에게 새로운 favorite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여행 중에 만난 사람이라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대답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야지. 그렇게 대답하면, 그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쏟아낼 테니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어떤 것을 좋아하냐는 질문만큼 편견 없이 할 수 있는 질문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상황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에게 이끌리는지, 어떤 문장이 나를 웃고 울게 하는지, 좋은 것은 더하고 내 취향이 아닌 것은 덜어내고 살아갈 것이다. 가감하며, 때론 과감하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고, 무엇이 좋고 싫은지 취향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여나 단호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만의 시간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듯,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다 보면 지금처럼 내 모습을 보며 만족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어렵겠지만, 철없어 보이더라도, 좋아하는 일 하며 적당히 잘 살 테야!


듣다.

Bruno Mars의 That's What I Like를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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