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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04. 2019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길치

난... 가끔... 길을.... 잃는다...

걷다.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을 걷다.


 해가 구름을 다 잡아먹었는지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날, 에어비앤비에서 나와 콜렉티보 택시를 타고 에덴 세노테에 갔다. 짐을 간소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에 들고 나온 소지품은 고프로 카메라, 락커 빌릴 돈 그리고 왕복 교통비뿐이었다. 일말의 주저 없이 휴대폰을 침대 위에 휙 던지고 나왔다. 그때까진 휴대폰이나 지도 없이도 숙소까지 잘 찾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건의 발단은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시작됐다.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에 위치한 에덴 세노테.  *세노테:석회 기반암이 빗물에 무너져 표면을 드러낸 지하수 샘

  에덴 세노테에 도착해서 수영을 마치고, 다시 콜렉티보 택시를 타고 숙소 근처에서 내렸다. 월마트에서 과자랑 망고를 잔뜩 사고 숙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길치 만렙인 난 숙소가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헤맸다. 헤매는 건 늘 있는 일이라 당황하지 않고 자작곡 <헤매다 나~오겠지요오>노래를 부르면서 숙소를 찾았다. 이상하게 그 집이 그 집 같고, 저 숙소가 내 숙소 같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내 숙소가 나올 것 같은 아리송한 헛된 발걸음이 이어졌다. 당황하기 시작했을 땐 비지땀이 얼굴의 곡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에어비앤비 특성상, 상호명이 적힌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택이 밀집된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핑계를 대보자면, 내 숙소 같은 경우에도 그랬다.


  길치인 난 방향이 반대로 바뀌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내가 숙소를 단번에 찾을 리 만무했다. 방향과 길을 잃을 때면,  ‘귀여운 호영이 또 길을 못 찾는구나?’ 생각한다. 길치인 게 캐릭터화 되면 더 재밌어진다. 헛웃음이 나오고 그 뒤론 와하하 웃으며 상황을 받아들인다. 재밌음도 잠시였다. 휴대폰, 숙소 명함이 없으면, 숙소를 찾을 수 없는 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판단했다. GPS 없으면 이틀이나 묵었던 숙소를 찾지 못하는 여행자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30분쯤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슈퍼에 들어가 주인에게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들어가 근처 숙소를 찾았다. 이상하게도 숙소가 나오지 않았다. 페이스북 로그인을 해서 숙소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로그인이 계속 실패했다. 영어를 잘 못 하셨던 아저씨는 지나가던 동네 친구 두 명을 불러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분들은  자기 사무실인 옆 건물로 들어오라고 했다. 들어가기 전까지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도망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경계태세를 갖추고 부스럭거리는 과일봉지를 들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혼자 여행할 때 누군가 호의를 보이면,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탓이었다.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 에어비앤비 숙소. 다시 찾으라고 하면 아마 난 못 찾을 거라 확신한다.

 그때부터 숙소 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의 노트북으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 근방 숙소를 다시 찾았다.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도 내가 묵었던 숙소가 당최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숙소의 특징에 대해 서술했다.

“흰색 벽, 지붕은 파란색이고, 삼층 건물이었어.”

그는 A4용지에 내가 말하는 대로 집을 그려 넣고, 특징을 옆에다 적어 내렸다. 이 모습은 마치 범인의 몽타주를 만드는 형사와 목격자의 오가는 긴박한 현장 같았다. 페이스 북과 이메일  비밀번호는 몇 차례 틀렸다. 정해진 비밀번호는 몇 개 되지 않는데, 어떻게 만날 그렇게 까먹는지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시도 끝에 예약 내용이 수신된 메일함에 들어가 숙소의 이름과 숙소 주소도 얻었다. 메모지에 숙소 정보를 적고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가려는데,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주소만 갖고 모르잖아. 우리가 좀 더 도와줄게.”

짧은 시간 안에 그분들은 나를 아주 잘 파악했다. 그가 구글맵에 주소를 검색했는데, 엉뚱한 집이 나왔다. 우리는 구글맵 로드뷰로 이 동네 일대를 드라이브했다. 야속하게도 숙소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나 혼자 가볼게. 주소는 아니까 물어보면서 가면 될 거야.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그가 “우리가 차로 태워줄게. 얼른 가자!”라고 말했다. 미안해서 사양을 했는데 그들은 “깜깜해져서 찾기 어려울 거야. 시간이 늦었어.” 시간은 오후 8시. 이미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결국 그들과 차에 탔다. 그와 나는  “이 집 맞아?” “아니야”를 반복하며 동네를 차로 돌았다. 10분 정도 돌았을까, 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 집 맞지?!” 드디어 찾았다! 나는 와하하하 웃으며 뒷좌석에서 물개 박수를 치니, 그분들도 환하게 웃으며 장단에 맞춰 박수를 쳐주셨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마트에서 산 망고와 과자를 내밀었다. 줄 수 있는 게 이 망고밖에 없다니…. 받을 것 같지 않았지만, 정말 받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차 문을 닫았다. 그들은 내가 대문 앞에 서서 다시 인사하기 전까지, 엄마미소를 지은 채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출발하고 대문을 바라보고 섰다. 열쇠를 꺼내 다시 대문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을 크게 벌리고 엄마 잃은 아이처럼 울었다. 터진 폭포는 광대를 타고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집을 찾은 안도감, 집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불안한 감정, 깜깜한 밤에 숙소에 도착한 무서움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이 숙소를 찾아준다고 나섰을 때 그들의 마음이 거짓일까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지구 반대편에 날아온 나를 위해 그들이 내어준 호의가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듣다.

Honne의 Sometimes를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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