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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07. 2019

쿠바에서 슈퍼 들어가는 방법

울티모, 마지막 사람은 누구인가요?

걷다.

쿠바 아바나를 걷다.


  쿠바는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모든 슈퍼에서 생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생수를 판매하는 슈퍼를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쿠바 가이드북에는 생수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 표시되어 있고, 여행자들끼리 생수를 싸게 파는 곳을 공유하기도 한다. 저녁 시간대에는 물건이 없을 수도 있으니, 자주 사용하는 소모품이라면 눈 앞에 보일 때 미리 구매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와이파이 카드를 구입할 수 있는 통신사나 슈퍼, 상점 앞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구하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쿠바에서 슈퍼나 식당 앞에서 대기할 때 줄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대기할 때 줄을 일렬로 서지 않아 어디가 마지막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인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물론 일렬로 대기하는 곳도 있다.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서있어서 그저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인 줄 착각하고 들어갔다 나왔을 때,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한 적이 있었다. 까사(숙소)로 돌아와 사장님에게 그날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니, 사장님은 배를 잡고 웃으신 후에야 쿠바에는 줄 서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아바나 시내의 환전소와 약국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 쿠바 시민들.

  쿠바에는 ‘울티모(ULTIMO)’ 문화가 있다. 울티모란 마지막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때,  줄 앞에서 “울티모?”라고 물으면 마지막 사람이 “저요!” 손을 든다. 내가 마지막에 줄 서 있을 때, 누군가 와서 “울티모?” 물으면, 마지막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간혹 줄을 서고 있다가, 가방이나 짐을 잠시 두고 볼일을 보러 가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람이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줄 서있을 땐, 마지막 사람이 누구인지만 파악하면 된다. 슈퍼나 식당에 갈 때 심지어 아이스크림 가게를 갈 때도 줄을 오래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줄을 서고 있을 때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쿠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곳이 통신사 앞이든, 공원이든, 친구네 집 앞이든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은 지루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쿠바에서 4G가 펑펑 터진다면, 사람들은 입을 닫고 휴대폰만 보고 있게 될까? 줄을 서고 있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금세 아득해지곤 했다.

쿠바에 가게 되거든 "울티모!"를 외쳐보세요!

 2015년 이어 2018년 두 번째 쿠바를 방문하면서, 어쩌면 내가 변화하기 전 쿠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울티모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한참 뒤에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첫 번째 왔을 때 쿠바보다 다시 찾은 쿠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변했다. 2017년 미국과의 수교가 체결되고, 2018년 2월 쿠바의 헌법은 1976년 이후 개정되었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인정, 외국인 투자와 인터넷 개방 등 점진적으로 체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부서지고, 세련된 높은 건물들이 낡은 건물 틈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물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3년 전 쿠바가 그립다가도, 쿠바 사람들을 생각하면 쿠바는 변화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생각도 든다. 쿠바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 욕심과 쿠바의 변화를 이해하는 척 둘 사이를 오가며 두 번째 쿠바 여행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듣다.

Cico & Rita의 Nocturno En Batanga를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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