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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11. 2019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

아디스아바바에서 메켈레 가는 버스 안에서

걷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걷다.


 아무 근심 없이 게으름을 한껏 피우던 이집트를 떠나 도착한 곳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였다. 하연이와 아프리카 종단을 하기로 결심한 뒤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그리고 에티오피아 메켈레에 위치한 화산이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창문 바깥으로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말없이 예약한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  낡은 건물이 많은 후미진 동네에 내렸다. 구글맵이 숙소 위치를 찾지 못해 조금 헤맸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와 방의 상태를 살펴보는데 침대 시트는 눅눅하다 못해, 축축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면 좀 낫다는 직원의 말에 에어컨을 틀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샤워를 하려고 샤워기를 틀었는데 녹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낡은 샤워기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 있었다. 샤워기 물을 몇 분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샤워를 해도 찝찝한 기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호스텔 바깥으로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릴 동물원 철장 속 원숭이 보듯 뻔히 쳐다봤다.


검은 피부와 대비되는 흰자위, 빠질 것 같이 깊은 큰 눈동자가 노골적으로 하연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땅을 쳐다보며 걸었다. 몇 명의 사람은 기움질로 수차례 고쳐 입기를 한 듯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 거리에서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고  노숙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숙소는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곳으로, 배낭여행자들이 가는 흔한 곳은 아니었다. 평이 좋다는 식당에서 먹은 밥도 어찌나 짜고 맛이 없던지에티오피아에서 우울함의 첫 번째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아디스아바바 식당에서 시킨 음식. 웬만하면 음식을 남김 없이 먹겠지만, 너무 맛이 없잖아요.

 하연이와 여행하면서 어딘가로 이동할 때, 먼저 제안하거나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나였다. 침대에 누워있던 하연이가 갑자기 나에게 결심에 찬 듯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언니. 우리 빨리 이곳을 떠나자.”

느긋한 여행 성향을 갖고 있는 하연이와 나는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이곳을 탈출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인터넷에서 이동하는 방법을 알아볼 새도 없이, 호스텔 체크인 카운터에 있던 직원에게 메켈레 가는 버스터미널이 어디냐고 물었다. 직원이 메모지에 주소와 위치를 설명해줬다. 메모지를  꼭 쥐고 길을 나섰다. 호스텔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느끼며 버스터미널까지 걸었다. 메켈레 가는 버스 티켓을 달라고 하니, 이틀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여 그 표를 구매했다. 하연이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여길 하루 더 있어야 한다니.” 말하던 하연이의 절망적인 그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선명하다.

아프리카 여행메이트 하연이는 화날 때면, 손을 머리에 갖다대며 한숨을 연거푸 쉬는 버릇이 있다.

 이틀 뒤, 아디스아바바에서 메켈레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탄 승객 중 유일하게 우리만 외국인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한 번씩 훑어보고 자리에 앉았다. 빈자리가 많아 하연이는 내 뒤에 앉아 가고 있었다. 의자는 푹신함은 단 1g도  없이 딱딱했고, 버스 의자는 자기 멋대로 끽끽 대며 소리를 냈다. 하이라이트는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승객들은 가방 어디선가 검은 봉지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버스에 검은 봉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유가 퍼즐처럼 맞춰졌다. 사람들은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 내고도 모자라서 헛구역질을 해 댔다. 하연이 뒤에 앉아있던 승객이 토하기 시작하자, 하연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나에게 다른 자리로 간다고 말했다. 자리를 옮긴 하연이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언니. 자리 옮기고 자려는데, 뒤에 사람이 또 토했어.” 하연이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에 이은 토를 부르는 사나이냐고 놀리며 낄낄댔다. 초반에는 웃을 힘이 남아 장난도 치고, 우리가 에티오피아에 오지 않았더라면 행복의 총량이 달라졌을까 등 무용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빨리 흘러가길 바라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메켈레로 향하던 버스 안.

 17시간 버스 이동이라 자다 깨고를 반복하던 중, 옆에 앉아 있던 하연이가 한쪽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언니. 일어나서 저 창밖에 좀 봐봐!"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커튼을 오른쪽으로 치고 창밖을 내다봤다. 무성한 초록색 풀, 초록색 나무, 초록색 산은 빛을 받아 선명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그 뒤로 하늘색 도화지처럼 펼쳐진 맑은 하늘까지 내 눈 가득 들어왔다. 자연 그대로의 초록색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본 초록색은 초록색이 아니라는 듯, 초록과 밝은 빛의 조합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녹물로 샤워하고,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아냈던 고생이 잠시 잊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갑절이 되어 내게로 들어왔다.

 이후 '빛에 통과된 초록색'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됐다. 사무치게 아름답고 멋있는 장면을 그대로 형언해내기 힘들다. 진짜는 어떤 형용사, 꾸밈이나 덧댐이 필요하지 않다. 어떠한 방법으로 표현해도 그 아름다움이 퇴색될 것만 같아 조심스러워 지기까지 한다. 지옥 같은 버스였지만, 다시 그 풍경을 보여준다면 17시간 버스 다시 타고 싶다.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 지쳐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큰 감동이 찾아온다. 메켈레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고, 창밖 풍경에 매료되어 긴 이동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듣다.

David Choi의 Enjoy the view를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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