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이번에 들어가면 못 나올 것 같아

연재 | 나, 이제 자도 돼? ―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시간들

by 이서우

“인호야,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엄마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제부터 혈뇨가 보이신대. 색이 많이 안 좋고, 통증도 있으신가 봐.”


아버지 장례 이틀째.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피로에 까맣게 되고 있는 누나가 나를 장례식장 구석으로 이끌고 나직이 말해준다.


“어... 혹시 예전에 방광암 수술하기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 많이 아프시데?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하나? 어떻게 하지?”


어머니는 이미 네 번의 방광암 수술을 견뎌내셨다. 매번 비교적 초기에 발견되어 회복하실 수 있었지만, 수술이 거듭될수록 몸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약해지고 있었다.


“수술 전에 대체로 혈뇨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심하게 나왔던 적은 잘 없는 것 같아. 여러 번 수술했지만, 거의 다 초기였어서, 증상이 막 심하지는 않았거든. 근데 이번에는 통증도 있고, 색이 짙어서... 그래도 지금은 병원 안 가시겠데. 상을 다 치르고 싶어 하셔. 너한테도 말하지 말라시는데, 알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누나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말해준다. ‘너도 알고는 있어야 할 거 같아서’라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신이 없어, 왜 화끈거리는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다행히도. 동생의 긴 부재 동안 누나의 얼굴은 수도 없이 저렇게 하얘졌었겠지. 그럴 때마다 난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세상이라도 구하고 있었던 걸까.

참지 못하고, 당장 어머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엄마, 누나한테 얘기 들었어. 좀 괜찮아? 많이 아파? 지금이라도 병원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응. 이번엔 좀 아프네. 아이, 그래도 장례는 치러야지. 장례 치르고 보자.”

“아니, 그래도...”

“됐어. 더 얘기하지 마.”


귀국 후 처음 듣는 어머니의 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내 말을 잘랐다. 분명히 노기가 응축된 목소리. 직접적인 감정 표현은 처음이어서, 마음이 움찔했다.


삼일장을 치르는 내내, 어머니는 붉은 소변을 보셨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하셔서, 그리고 충격을 받으셔서 그러시리라 믿고 싶었고, 점차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소변색은 선홍색에서 점점 검붉게 변해갔다. 마치 생명을 통째로 쏟아내는 듯한 어두운 핏빛. 이미 차가운 바닥에 처박힌 내 양심을 더 저릿하게, 무겁게 짓누르던 그 빛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어머니와 누나 둘이서 확인하고 속닥이면, 그제야 좇아가서 나도 확인해야 한다면서 억지로 부산스럽게 소변색을 확인하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마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머니와 누나는 이미 익숙한 일인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를 대비하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겉모습은 그랬다.


우리는 아버지의 발인이 끝나자마자 병원을 찾았고, 벌써 네 번이나 재발했던 방광암이 다시 찾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수술 전에 혈뇨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나온 적은 없었고, 전이의 가능성도 보여서, 빨리 수술을 해야만 했다.


수술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의 얼굴이 순간 까맣게 변하며 스쳐 가던 깊은 실망과 절망의 눈빛이 기억난다. ‘정말 수술은 더는 하기 싫다’고, ‘이 고통을 또 겪어야 하냐’고 절규하는 듯한, 깊은 실망과 체념에 깃든 눈빛이었다.


바로 2주 후로 긴급하게 수술 일정이 잡혔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오래 끌어온 싸움을 바로 옆에서 함께하게 되었다.


의료파업과 코로나라는 인간 스스로 만든 거대한 벽 앞에서, 어머니의 고통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안 된다’는 말 뿐인데, 어머니의 몸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빠른 수술 날짜를 받아 내는 것뿐이었다.


“또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아이...정말... 도대체 몇 번째니... 나 이제 정말 싫어.”


어머니는 정말 수술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만, 예전보다 심해진 혈뇨와, 암의 전이 가능성이라는 말이, 결국 모두의 결정으로 수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말 싫다는 명확한 의사표현을 어찌어찌 뭉게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어머니의 진심을 우리는 제대로 듣고 있었을까? ‘효’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책임감, 아니면, 그래도 뭔가를 했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한 자기 위안이었을까. 당신께 최선인 것은 우리가 안다는 것은 혹시 오만이 아니었을까. 만에 하나 그때 그냥 수술을 포기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정말 받기 싫어. 이번에 들어가면 못 나올 거 같아.”


아버지의 장례를 막 마친 어머니는, 정말 불안해하고 계셨다. 불안한 징조라도 느끼신 듯, 입원하는 당일 까지도, 이번에는 다시는 못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되네 이셨다. 그런 어머니를 다독이며 저녁 늦게 자리가 난 병실로 들어갔다.


수술을 끝내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자 크게 들이쉬어, 흐으읍! 자 천천히 내쉬어, 후우우. 너무 잘하네. 폐가 쫙 펴져야 한다네. 아까 간호사 선생님이. 한 번만 더 해보자. 아이 이뻐. 잘하네! 수술받고 힘들어서인지 더 청초해 보이네! 하하. 한 번만 더!”


또다시 수다스러워진 아들의 말에 별다른 반응 없이, 어머니는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따라 숨을 쉴 뿐이었다. 어머니와 나의 숨이 일치할 때 느껴지는 이상하리만치 깊은 뭉클함. 지난 네 번의 수술 동안, 이 수술 후 호흡은 누구와 함께 했을까. 지금 내가 잡은 손이, 내 목소리와 숨결이 어머니에게 잘 전달되고 있을까. 뚜렷하게 느껴지는 호흡의 일치만으로도 귀국하길 잘했다며 안도할 수 있었다. 간신히 사람 구실을 하고 있다는 작은 위안.


그렇게 내가 곁에서 지킨 첫 수술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수술 후 시간이 지났는데도, 혈뇨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색이 옅어졌다가 다시 진해지고, 멈췄다가 다시 터지듯 이어졌다.


불안해하는 우리를, 교수님은 따로 병실 밖으로 불러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이번에는... 조금 전이가 있었습니다. 요도를 따라 신장까지 영향을 미쳤고, 신장과 요도 연결 부위에서 출혈이 발생한 걸로 보입니다. 그 부위를 전기 소작으로 지져서 출혈을 멈춰보려 했는데, 막상 내시경으로 들어가 보니, 신장 안, 정확히는 신배 쪽에 암세포가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신장 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은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쪽은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닫았습니다. 다만 방광 내에 남아 있던 병변은 제거했고, 그 부분은 처리됐습니다.”


방광은 해결됐지만, 신장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핏물은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암을 모두 없앨 수는 없고, 앞으로도 혈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항암치료 같은 건...”

“지금 상태에서는 항암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신장 기능 자체가 너무 약해서... 그리고 80세 고령이시니, 이런 경우는 진행도 느립니다. 천천히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일단 지켜보죠.”


‘지켜보자’는 말.


시간만 좀 지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렸던, ‘지켜보자’는 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처럼 들렸던, ‘진행이 느리다’는 말. 하지만,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의 가장 부드러운 형태였던 그 말들. 당장 위태로운 지경은 아니지만, 이제 돌아오지는 못할 곳에 이르렀다는 의미.


우리는 그 의미를 그렇게 듣지 않았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희망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정중한 형태의 사형 선고였다는 것을. 다만 우리가 아직 희망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그 뜻을 외면했을 뿐이라고.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은 끝났지만, 무언가 끝나지 않은 감각이 묵직하게 따라왔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우리가 겪게 될 시간들의 시작이란 걸 아직은 아무도 모른 채였다.


***이 글은 경험에 기반한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등장하는 인물, 지명, 그리고 일부 내용은 허구적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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