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 이제 자도 돼? ―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시간들
연재 | 나, 이제 자도 돼? ―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시간들
1장: 모든 것은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인호야. 아버지 임종하셨어. 음… 니가 와주면 좋겠어."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한국의 어머니 번호로 전화가 왔다. 20여 년의 미국 생활 동안 한 번도 전화가 걸려온 적 없는, 불길한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눈과 목이 따끔거렸고, 이유 없이 불안했으며, 기분 나쁜 옛일이 자꾸 떠올랐다. 오래도록 느껴왔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다시 살아나 힘겹게 잠자리에 들었던 터였다.
"아… 어떻게 된 일이야? 다 좋아지신 거 아니었어?"
아버지는 코로나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셨고 혈액암 증상이 나타났지만, 최근 상태가 급격하게 호전되어 모두가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한 달 전쯤에는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를 들추며 호전된 상황을 증명하듯 보여주셨고, '이제 되었어요. 다행입니다'라고까지 하셨다. 오랜만의 안도감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임종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종언은 믿기지 않았다. 자꾸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나빠지신 것 같아. 간병인이 산소 포화도가 자꾸 떨어진다고 연락을 해와서 병원으로 급하게 오고 있었는데… 병원 의료진이 빨리 오라고 해서 도착했지만, 이미 임종하셨어. 누나 바꿔줄게."
어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하셨다. 울먹이지는 않으셨고 담담하고 차분했지만, 깊게 잠긴 슬픔과 고통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묵직함이 내 죄책감을, 옛일로 원망이나 하고 있던 내 어리석음과 미성숙을 옥죄어왔다.
"인호야, 제발 빨리 와줘. 아버지 돌아가셨어… 흐으윽. 빨리 와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누나의 울음이었다. 아들의 오랜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무 내색 없이 아들 노릇까지 다 하며 부모님 곁을 묵묵히 지켜온 작지만 강인한 사람. 그런 누나가 무너져 있었다.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서럽게 우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알았어. 진정해. 바로 출발할게. 미안해. 미안해. 엄마 잘 부탁해. 미안해."
전화를 끊고 바로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것은 이튿날 새벽 비행기였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와 누나와 잠깐씩 통화를 했고, 내 도착에 맞춰 장례를 하루 미루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치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훗날 누나에게 물어봐도 당시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니, 그 혼란의 깊이를 짐작할 뿐이다.
전화를 받고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절대로 만회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낭패감이 나를 압도했다. 슬픔과 후회,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와 대화해 보리라 믿었던 어리석은 기대는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무참히 깨져버렸다. 내 삶의 최악의 순간이었다.
눈을 감으면, 5년 전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심하게 다투던 날의 풍경이 떠올라 숨이 막혔다.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이 오갔고,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멈췄다. 나는 그 긴 침묵의 세월을, 당연한 벌이자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그 모든 나의 합리화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훗날, 나는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엄마, 나 아버지 미워하지 않아요. 내가 잘못한 거 다 사과하고, 내가 섭섭했던 거 다 용서했어요. 좋은 데 가시라고 절에 가서 빌었어요. 엄마, 걱정 말아요.'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아주 오랜만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그 순간, 비행기 안의 나는, 그 미래의 용서에 가닿지 못한 채, 그저 5년의 시간을 통째로 후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할 자격조차 자기 스스로 걷어차 버린 아들. 그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 우버를 부르는데, 30분째 잡히지 않았다. 다른 플랫폼도 먹통이고, 로컬 택시도 부를 수 없었다. 미국에 살면서 처음 겪는 황당한 상황. 평생 놓치지 말아야 할 비행기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인데. 갑자기 너무 겁이 났지만, 마음을 다잡고 직접 운전해서 공항에 가기로 했다. 유난히 짙게 깔린 안개를 헤치며 공항에 도착했고, 아무 주차장에나 차를 세웠다. 손발이, 그리고 마음이 계속 떨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탔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빨리 장례식장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애산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주세요." 목적지를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사님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휴지를 달라고 했더니, 그분은 미안해하며 물티슈를 줬던 게 기억난다. "이거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오히려 그 차가움이 시원하게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
츄리닝 바람으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누나가 흰 상복을 입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조문객은 많이 와 계셨다. 누군가 내 트렁크를 받아주었고, 난 상복으로 갈아입고 상주 노릇을 시작했다. 흰 상복 속의 어머니와 누나는 너무 연약해 보였다. 흰색이 그렇게 슬프고 가냘픈 색인지 처음 알았다. 조문객은 대부분 부모님 손님이거나 누나의 지인이었다. 20년 가까이 한국을 비운 내게는, 당연하면서도 죄송스러운 풍경이었다.
의연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듯한 어머니. 난 온몸이 계속 떨려옴을 애써 숨기면서, 어머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나 자꾸 무언가를 결정해 달라고 하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불안했다.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가 그래도 항상 집안의 위기에는 중심을 잡고 결정을 해주셨는데. 이제는 결정해 줄 사람이 없구나 하는 쓰디쓴 깨달음.
어머니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까지 하셨다. 그 말에 압도적인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머니를 꽉 안아드렸는데, 너무 가볍고 앙상하게 마른 몸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내 양심을 차가운 장례식장 대리석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그 꼿꼿하던 분이 휘청하는 게 느껴졌고, 내 오만과 이기심이 영혼의 멱살을 잡고 끝없이 흔들었다.
누구도 내게 원망의 말을 하지 않았고, 망자는 처연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침묵이 가장 강력한 형벌임을 그때 알았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아, 이제는 정말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그래도 의연하게 버텨내야겠구나.'
그렇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1년 6개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글은 저의 경험에 기반한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등장하는 인물, 지명, 그리고 일부 내용은 허구적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