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귀국 ― 돌아가지 않을 결심

연재 | 나, 이제 자도 돼? ―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시간들

by 이서우

“I’m sorry for your loss, man … and welcome home.”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길, 미국의 한 공항 이민국 직원의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홈’이라니. 나는 정말 돌아온 걸까?


오랜 미국 생활 끝에 영주권을 받았을 때는 이제는 그곳이 내 집이라 여겼다. 아니 여겨야만 할 거 같았다. 하지만 “웰컴 홈”이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그 말은 낯설게 다가왔다. 내 마음은 여전히 두 갈래의 길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와 어머니의 병세 악화는 그 고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피곤한 일상, 그리고 때로는 갑자기 맞닥뜨리는 적대적 경험들 ―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서 일부러 차를 바싹 붙이며 경적을 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조롱하던 젊은 백인들,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는 일부러 기침 소리를 크게 내며 내 뒤를 바짝 따라붙던 이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런 백인 도시에서의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분노와 불안을 남기곤 했다.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 상처가 조금씩 무뎌지긴 했지만, 피로와 고립의 감각은 여전했다.


어머니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그 옛날 당신의 젊은 시절, 배를 타고 미국에 건너가 힘겹게 일하며 공부했던 분. 낯선 중부의 백인 도시에서 어렵게 고립을 견디던 기억을 이야기해 주셨었다. 몸살이 심할 때면 아직도 ‘그레이하운드 버스’ 꿈을 꾸곤 하신다며 웃으셨던 어머니. 덕분에 내 외로움과 피로를 가장 깊이 이해해 준 사람도 어머니였다.


미국으로 들어간 나는, 끝을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잠시 붙들고 있었다. 오피스에 홀로 남아 긴 글을 쓰고, 리서치를 하고, 보고서를 정리했다. 나 자신을 지켜낸다고 믿었던 유일한 것들을 그렇게 마무리 짓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 일들은 나를 지탱해 주었을지는 몰라도, 나의 부모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내게 항상 위로가 되었던, 텅 빈 도시의 정적과 고요 속에, 나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단어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40대 남자. 한국 귀국. 새 출발. 직업.”


미국생활은, 혼자여서 편했다. 마음을 열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언가 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지만, 혼자여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으니까, 홀가분한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의 마지막 방어선은 나 혼자였다.’


그래서 항상 절박하고 외로웠지만, ‘다른 누군가의 방어선이 되지 않아도 되는 후련함’도 있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책임지는, 그래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그런 삶.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와 어머니의 병환은 내 삶의 전부를 재정의했다.

곁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임종을 겪으며, 그리고 어머니의 병세 악화를 목도하면서, 내가 지키려고 발버둥 쳐온 이 모든 것이 ― 아니, 그냥 내가 일상으로 평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미국 생활이 ― 너무 큰 사치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들을 외롭게 하고 결국 잃게 만들어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아직 어머니가 남아 있었고, 그래서 그 곁을 지키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었다.


당장 백수가 된다는 두려움은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해 보자는 마음도 있었고, 상황의 변화가 내 결심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환이 아니었다면, 또는 내가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들었다면, 아마 그런 생각은 끝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귀국을 선택했다. 이름만 ‘잠정적 귀국’이었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돌아오지 않을 결심을 내리고 있었다. 내게는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늦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몇 번이나 더 허락될지 알 수 없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찬란한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글은 경험에 기반한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등장하는 인물, 지명, 그리고 일부 내용은 허구적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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