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마지막 챕터

연재 | 나, 이제 자도 돼? ―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시간들

by 이서우

평일 저녁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유선 전화가 걸려왔다.


요점은 이랬다 — 어제 대형병원 외래에서 받은 어머니의 혈액검사 결과, 적혈구 수치가 너무 낮다는 것.

지금 당장 병원 응급실로 와서 수혈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을 찾은 일은 몇 번 있었기에, 예전만큼 당황하지는 않았다.
시야가 갑자기 좁아지거나 구역감을 호소하시던 일이 불과 몇 달 전이었고,
그때도 나는 혼비백산하여 병원으로 향했었다.


이번에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막 먹으려던 배달 순두부를 식탁 위에 남겨둔 채 병원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계단 앞에서 바르르 떨며 더는 움직이지 못하셨다.
머리가 하얘졌다.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불안을 애써 숨기며 최대한 의연하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 금방이야. 나 여기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마.”
어느 정도 들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같은 말을 되뇌었다.

어머니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자연스럽게 내 목을 감싸 안은 어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 눈빛이 평온한 건지, 초점을 잃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 생명이 온전히 나를 믿고 의지하는 느낌.
그건 부담이 아니라, 어떤 경건한 의무감처럼 느껴졌다.
목이, 가슴이 메어왔다.

‘아무 일 아닐 텐데, 왜 이러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 차가 있는 곳까지 뛰었다.

경비 아저씨도 놀라 뛰쳐나온 듯했다.
경비실에 맡겨둔 키로 문을 열어주셨고,
나는 어머니를 조심히 뒷좌석에 앉혀드렸다.

급한 마음을 숨기며 병원으로 향했다.

차는 다소 막혔다.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별다른 대답은 없었지만, 어머니는 눈을 뜨고 앞을 응시하셨다.
그거면 충분했다.


“괜찮아, 엄마. 별일 아니야. 얼마 전에도 나랑 응급실 갔었잖아. 아무 일 없었잖아. 기억나지?"
"아유, 우리 엄마 진짜 의젓하고 담담하다! 후딱 다녀오자, 응?”


그 말들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주문에 가까웠다.

병원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누나가 모시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나는 차를 주차하고, 병원 서관 근처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잠시 후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니는 급히 수혈을 받고 있으며, 밤새 응급실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날 밤은 누나가 곁을 지키기로 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엔 흩어진 음식과 뜯지 않은 배달 봉투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처음 시켜본 하얀 순두부찌개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집 안은 누군가가 급히 짐을 싸고 야반도주라도 한 듯한 풍경이었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주변을 정리하며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정리를 하고, 새벽녘 누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히 수혈만 받으면 안정될 것이라 믿었다.
어머니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그 순간이 —
어머니가 4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시간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 장면은,
어머니가 이생에서 주어진 육신으로 마지막으로 떠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떨림과 따스한 온기를 내 품에 느낀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다음 날, 나는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께서 수혈 후 회복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중간중간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고생하는 누나에게 고마웠고,
저녁에 교대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실 문을 열자, 어머니는 평온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왔어?”
“응, 나 왔어. 좀 어때? 괜찮아?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대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셨다.
그 모습에 가슴속 깊은 안도감이 퍼졌다.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린 나는 책을 뒤적이며 어머니께 말을 걸었다.


“엄마, 누가 더 편해?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난 니가 편해. 네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


어머니의 눈동자가 촉촉해 보였다.
이상하게도 뭉클했다.


어머니는 평소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분이었다.
속정은 깊지만, 애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에 대한 표현도 어색해하시던, 시크한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그날은 분명히 말했다 —
“네가 편해.”


조금 신기했고, 정말 고마웠다. 아니 소중했다.
코끝이 찡해졌고, 나는 다짐했다.

“엄마, 내가 곁에 있을게. 절대 아무 데도 안 가.
"걱정하지 마. 내가 지킬게. 난 엄마 곁이 제일 좋아.”


우리는 더 많은 말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그 순간의 감정.
그리고 어머니가 내 곁을 원하셨고,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될 줄,
그때는 몰랐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하셨다.

“벽에… 저거 뭐니?”
“응? 아무것도 안 보여.”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 같아. 저기 봐, 물이 흐르는데.”

“엄마, 물 안 흘러. 괜찮아? 왜 그래? 엄마… 엄마! 나 좀 봐!”

어머니는 내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독백하듯 이어가셨다.

비상벨을 눌렀고, 간호사가 왔다.
당직의도 왔지만,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안정제를 투여하고, 아침까지 기다리자는 말뿐이었다.

밤새 어머니는 잠들지 못했다.
계속 몸을 일으키려 하셨지만 잘 되지 않았다.

병실을 집처럼 여기며,
“너네들은 왜 남의 집에서 뛰어다니니?”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보이는 듯 말씀하셨다.

“엄마, 아무것도 없어. 여긴 병원이야.
나야 나. 엄마 아들. 괜찮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동문서답과 실랑이만 반복되었다.

지친 새벽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 왜 그래… 이러지 마. 제발…”


어머니가 아주 잠시
나를 바라보신 듯했지만,
곧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밤을 넘기셨고,
새벽 무렵 겨우 잠이 드셨다.


아침이 되자 어머니는 깨어나셨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다.

그 후로는, 간혹 “응” 같은 짧은 반응은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완결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그날 밤이 마지막이었다.


그 마지막에,
나는 있었다.

비록 그 말들이 환각 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어떤 마지막이었다.

다양한 마지막을 함께 경험했지만, 그때 마지막이 시작되었던 듯하다.


어머니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부터,
말이 끊기고 침묵이 시작된 그 아침까지,
내 감정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평생 동안,
그토록 많은 감정을 한 번에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여섯 달.

나는 어머니 곁에서
내 생의 가장 중요하고, 행복하며, 동시에 아픈 시간들을 살아가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이 글은 경험에 기반한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등장하는 인물, 지명, 그리고 일부 내용은 허구적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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