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에서 후쿠오카, 다음을 기대하다

by 호유
불안과 안도 사이에서 맞이한 아침.


새벽녘, 아이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미묘하게 뜨거운 체온과 불안하게 뒤척이는 작은 몸. 체온계를 대보니 37도의 미열이었다. 태어난 이후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고 접종 때조차 열이 오르지 않던 아이였다. 잠이 단숨에 달아났다. 캐리어를 뒤적이며 챙겨 온 약을 하나씩 살펴봤다. 아직 해열제를 먹일 온도는 아니었다. 급히 꺼낸 해열 패치를 아이의 이마와 등에 붙였다.


30분마다 체온을 재며 밤을 지새웠다. 긴 시간 내내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유후인까지 온 것이 무리였던 걸까. 여행 일정을 너무 길게 잡았던 건 아닐까. 애초에 여행을 계획하지 말아야 했던 걸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얕은 숨소리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유후인에 마땅한 소아과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남편은 괜찮을 거라며 나를 다독였고, 우리는 조용히 밤을 버텼다.


(왼쪽부터) 정성스러운 조식. 꾸준히 데워지던 국.


지난한 시간을 지나 아침이 밝았다. 아이의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기운은 없어 보였다. 다행히 료칸에서 차려준 가이세키는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부드러운 생선구이와 달걀말이, 그리고 두부가 들어간 따뜻한 국 위주로 먹였다. 아이가 잘 먹고 있는지 계속 살피느라 우리는 나머지 반찬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음미할 여유는 없었으나 나름 든든한 식사였다.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길은 미리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다. 시골 마을의 한적한 역으로 빨간 기차가 천천히 들어왔다. 탑승객이 많지 않아 기차 안은 한산했다. 우리는 정해진 자리에 앉아 역 근처에서 사 온 당고와 크로켓을 나눠 먹었다. 아이는 열이 다시 오르지는 않았지만 더위에 지친 듯했다. 이마에 해열 패치를 붙여 주고 시원한 과일 주스를 쥐어 주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왼쪽부터)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운치 있는 유후인 기차역.


후쿠오카에 도착한 뒤 돈키호테에 들러 짧은 쇼핑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해열 패치도 추가로 구입했다. 전날 밤의 혼란 때문인지 위탁 수화물과 기내 수화물이 뒤섞여 있었다. 후쿠오카 공항 한쪽에 자리를 잡고 캐리어를 펼쳐 짐을 정리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예정보다 빠르게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장기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아이가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결국 졸음 쉼터에 차를 세웠다. 나는 아이를 안아 달랬고, 남편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설명했다. 한참을 토닥이는 사이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찾은 동네 소아과에서는 돌치레일 가능성이 크다며 걱정할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첫 여행은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밤의 기억은 자책에 가까운 감정을 남겼다.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여행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함께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살며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만의 일은 아니었다. 여정은 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갔고 나는 그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찾으려 애써왔다. 그런 시간들이 여행의 의미를 점차 넓혀주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이 결국 다음을 준비하는 경험이 되곤 했으므로.


그래서일까.

마음 한편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 여행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후쿠오카 마지막 편입니다.

아이와 함께한 첫 여행을 조용히 맺어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여행을 준비합니다.

— 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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