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아이 16개월 무렵
후쿠오카 여행의 마지막 밤 이후, 우리는 한동안 다시 떠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밤중에 아이의 체온을 확인하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여행은 국내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아이는 짤막한 말로 의사를 표현했고 제법 잘 걸었다. 여전히 안아 달라거나 유아차를 태워야 하는 변덕은 부렸지만, 여행지를 고르는 제약은 조금 줄어든 듯했다. 아니, 달라졌을 뿐이었다. 아이가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장소까지 고려해야 했으니 오히려 기준은 더 까다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이천이었다. 정오에 도착한 테르메덴은 겨울 바람 속에서도 포근한 공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몇 달 전에는 널널했던 수영복이 그날은 빈틈없이 딱 맞았다. 아이는 매일 보고 있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속도로 자라나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어떤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실감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아이의 통통한 팔과 다리를 연신 조몰락거렸다.
우리는 아이에게 흉내에 가까운 준비 운동을 알려주고 온수풀로 들어섰다. 아이는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겁에 질린 얼굴로 내 팔을 꽉 붙잡았다. 나도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수면 아래로 까치발을 딛고 서 있었지만 짐짓 여유로운 척 미소를 지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야외풀로 나갔을 즈음 아이의 표정은 두려움에서 호기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행히 나보다는 겁이 없구나, 안도하며 자잘한 물장구를 쳤다.
물놀이를 마치고 찜질방에서 식혜를 마셨다. 아이는 빈백 위에 스스로 몸을 눕히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처럼 느긋한 태도였다. 그 모습에서 어쩐지 중년의 연륜이 느껴져 웃음이 났다. 여행의 피로는 우리보다 아이가 먼저 풀고 있었다. 찜질방 한편에는 키즈룸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커다란 벽면 가득 책이 꽂혀 있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이 책 저 책을 꺼내 펼쳐 보느라 바빴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이 진지했고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밖이 어둑해질 무렵 시몬스 테라스점을 방문했다. 쇼룸과 전시관, 카페가 이어진 공간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숙면에 관한 다양한 제안들을 살펴보며 여행 이후의 일상까지 떠올려봤다. 하지만 아이의 관심은 실내가 아니라 바깥에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을 작은 걸음으로 몇 바퀴나 돌았다. 반짝이는 조명 근처에서 총총 걷는 모습이 빛을 따라가는 듯 보였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리는 서둘러 아이를 유아차에 태웠고 여행 첫날은 홀연히 저물었다.
다음 날 아침, 마치 미로 안을 헤매는 것처럼 호텔의 정원을 구석구석 거닐었다. 사실 이천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곳, 에덴 파라다이스 호텔이었다. 예전에 출장 준비를 하며 알게 되었으나 결국 제외하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 뇌리에 오래 남아 있던 장소를 실제로 걷는 기분은 무척 묘했다. 당시 내가 발견한 풍경은 여름이었으나 지금은 겨울이었다.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공간이 주는 신비로운 인상은 여전했다. 아이는 정원의 키 큰 나무들 사이를 쉼 없이 돌아다녔고 우리는 술래잡기하듯 주위를 맴돌았다.
정원의 길이 티 하우스로 접어들었을 때 온실의 따스한 분위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연세가 지긋한 반발의 어르신들이 싱그러운 식물들 틈에서 향긋한 차를 머금고 계셨다. 이곳에서는 종종 원데이 티 클래스가 열리기도 한다고. 언젠가, 삶이 한가로워지는 시기에 다시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검지손가락을 잡아 끄는 아이의 재촉으로 문을 나설 수밖에 없지만.
호텔 뒤편에는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앞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고요히 줄을 서 있었다. 막 장례식을 마친 행렬이었다. 여행지에서 애도의 장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활기찬 배경 가운데 유독 선명한 정적이었다. 부푼 설렘으로 채워지리라 여겼던 여행 중에 삶의 마지막을 기리는 장면이 가만히 놓여 있었다. 주로 축제와 같이 여행지의 환한 순간들을 기록해 온 나에게 그 장면은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아이와 함께한 여행 또한 늘 시작과 성장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날 그곳에서 나는 여행의 끝을 의식하게 되었다.
잠시 예배당에 놓인 목재 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자라고 있고, 나 역시 미지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어쩌면 여행은 삶의 단면을 경험하는 일이 아니라, 삶 전체를 마주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후쿠오카에서 안겨 있던 아이가 이제는 앞서 걷고 있었다.
아이는 물에서든 숲에서든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리는 그저 뒤를 따랐다. 목적지가 아니라 아이의 호기심을 좇고 있었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이천 1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용인의 이틀을 담아봅니다.
— 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