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이상한 친구를 만나다

by 호유
차츰 거리를 좁혀오는 기린 무리.


이천에서의 오전을 뒤로하고 차로 30분 남짓 달려 용인에 닿았다. 이번 여행은 국내로 시선을 돌린 대신 이천, 용인, 수원 세 도시를 다채롭게 둘러보고자 했다. 그중 둘째 날 오후를 오롯이 보내기로 한 곳은 에버랜드였다.


내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기온이 영하를 맴돌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돈가스와 우동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아이는 어느새 분유도 이유식도 졸업한 시기였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나 여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집에서는 여전히 음식을 가려 먹였지만, 여행 중이라는 이유로 기준을 살짝 낮추었다. 평소보다 진한 맛에 아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물개들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며.


놀이공원 안은 제법 붐볐다. 아직 키가 작아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가 동물을 유난히 좋아했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토피아에서 보냈다. 그 가운데 대기 시간이 짧았던 씨라이언 빌리지에 먼저 들어갔다. 공연이 시작되자 물개들이 미끄러지듯 무대로 입장했다. 사육사를 졸졸 따라다니다 체중계 위에 올라 몸무게를 공개하고, 입을 크게 벌려 특유의 울음소리를 뽐냈다. 높은 다이빙대에서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에 객석에서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한 번도 칭얼대지 않고 넋을 잃은 채 공연을 관람했다. 덕분에 우리 역시 온전히 그 광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어서 로스트 밸리로 향했다. 창문이 뚫린 버스를 타고 야생을 둘러보는 동안 얼룩말과 코끼리 등 덩치 큰 동물들이 다가왔다. 특히 기린 구역에 들어섰을 때였다. 사육사가 건넨 먹이를 발견하고 기린이 긴 목을 창문 안으로 들이밀었다. 마침 우리 자리 바로 앞이었다. 아이는 코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눈동자를 담담히 바라보았다. 놀라 물러선 쪽은 오히려 우리였다. 멀어지는 기린에게 셋이 함께 손을 흔들었다.


긴 목만큼 길게 내민 혀.


사파리 월드에서도 비슷했다. 유리창 너머로 사자의 둔중한 몸짓과 곰이 부리는 재주를 흥미롭게 응시했다. 맹수의 존재 앞에서도 아이는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줄 한 켠에서 에버랜드 사진사가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양옆에 곰 두 마리가 합성되어 있었다. 아이는 그 사진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한동안 계속 보여 달라고 조르더니, 말이 더 유창해진 후에는 자신이 곰과 용감하게 사진을 찍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아이는 겁먹지 않았다.


놀이기구는 간신히 회전목마를 하나 탔다. 아직 키가 100cm에 한참 미치지 못해 셋이 같이 탈 수 있는 마차를 골랐다. 이전에도 회전목마를 타본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탑승을 마쳤다. 예전에는 그 표정을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오해했지만, 이제는 깊은 몰입의 신호라는 것을 안다. 내리자마자 아이는 짧게 외쳤다. “또.”


우리가 에버랜드를 방문한 날에는 문라이트 퍼레이드가 예정에 없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수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도 남았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저녁까지 먹고 잠시 야경을 둘러본 뒤 차에 올랐다.


작은 손이 이끄는 곳으로.


이동하는 사이 아이는 금세 잠들었다. 조용해진 차 안에서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추위를 잊을 만큼 즐거운 하루였다고. 아이의 세계를 넓혀줄수록 내 감정의 폭도 낯선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셋이 함께 마차에 앉아 있던 짧은 순간, 완전에 가까운 행복을 느꼈다고.


다음에는 날이 더욱 따뜻해졌을 때 다시 와보자고 말했다.

입을 세모로 벌린 채 잠든 아이의 얼굴 위로

놀이공원의 불빛이 스쳐 갔다.




'다시, 여행' 시리즈 중 이천 2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와 함께한 수원의 사흘을 담아봅니다.

— 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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