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내 꿈은 최순호 같은 축구선수였다.
그 시절 최고의 축구 선수 최순호.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 직후, 어느 날 모두가 장래희망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모두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장래희망을 얘기하고 앉았다.
한 칸씩 한 칸씩 차례로 지나 점점 다가온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심장 소리가 귀에 들렸다.
’ 뭐라고 하지?‘
장래희망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었어야지...
내 차례다.
당당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도 모르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저는 최순호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오~ 그렇구나~”
선생님의 짧은 한마디... 왠지 선생님의 호응이 별로인 것 같았다.... 선생님이 내가 마음에 안 드시나?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그 얘길 했더니
“으이그~ 다른 좋은 거 많은데 축구선수 그기 머시라꼬...” 라며 핀잔을 주셨다.
췟!
엄마는 최순호가 누군지도 모르고 축구에 관심도 없다. 나는 나름 괜찮은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담임 선생님도 엄마도 영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과학자나 대통령이 아니라서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다.
엄마는 7살 아들의 남다른 눈치력과 관찰력을 전혀 모르신다. 그 아이가 생각보다 어른들의 말과 표정을 다 살피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엄마도 담임선생님도 모르셨을 거다.
국민학교 입학 바로 전 해의 여름 무렵이었다. 한동네 살던 상문이 형이 축구화를 물려줬다.
얏호! 나에게도 축구화가 생겼다.
어딜 가던 축구화만 신었다. 검은색 가죽에 흰색 아식스였던가... 프로스펙스였던가... 어쨌든 브랜드도 붙어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닥에 스파이크가 있는 진짜 축구화다.
걸음마다 드륵 드륵
플라스틱 스파이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뭔가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발걸음을 약간이라도 세게 내딛을 땐 발바닥이 짜릿하다. 쿠션감은 제로다. 그래도 상관없다. 진짜 축구화니까.
내가 살던 동네 뒷산 입구에는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넓게 모이는 곳에 빨래터가 있었다. 반듯하고 평평하게 콘크리트 수조와 좌우로 넓은 둔덕을 만들어 놓으셨다. 요즘 표현으로는 썬큰 구조의 수조이다.
위에서 계곡물이 흘러내려와 큰 콘크리트 수조에 물이 가득 채워지고 자연스럽게 넘쳐흘러 내려가는 구조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을 생활하수로 오염시키는 심각한 고발 현장이다.
우리는 종종 엄마를 따라 나서 빨래터에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혼자 스스로 머리감기를 처음 해본 곳도 거기였다.
빨랫감을 잔뜩 챙긴 엄마를 따라나선 그날도, 당연히 축구화를 신고 갔다. 엄마는 빨래를 했고, 나는 세수를 했다. 바지를 깊이 걷어올리고 허벅지도 씻었다. 신고 있던 축구화도 씻겨줬다. 축구화가 물을 흠뻑 빨아들였다.
동네 아줌마들이 합류해 인사도 하고 엄마는 한참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발에선 걸을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다.
찌걱 찌걱 드륵 드륵
걸음마다 젖은 축구화에서 발이 빠졌다 다시 끼워지며 바람 빠지는 소리, 스파이크의 플라스틱이 부딪히는 소리가 교차되어 걸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래도 좋았다. 진짜 축구화니까. 정말 아무 상관없이 축구화라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요란한 소리는 엄마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내 발을 내려다보신다. 걷는 동안 한참을 보시더니 한마디 하신다.
“그거 버리자.”
나의 축구화와의 행복은 딱 그 한마디로 끝났다.
우물쭈물 아무 대꾸를 하지는 못했다. 늘 그렇듯
아니. 싫어. 나 이거하고 싶어. 나 저거 좋아. 내 생각을 말하는 건 어렵다. 나는 내가 말을 하고 난 후의 상항은 뻔하다. 서로의 의견이 대립될 뿐이고, 결국 한사람은 포기를 해야한다. 내 포기가 쉽겠지... 해보지도 않은 말의 결과를 지레 짐작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엄마는 내 말을 절대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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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들은 착해서 어쩌고 저쩌고.... 옆집 아줌마에게 한마디 하신다. 그런데 사실 온순한 성품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소리 두 번 하게 하는 것이 싫다. 포기가 빠르다.
그날 집에 돌아온 이후 다시는 축구화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축구화를 소유했던 일주일의 행복감은 아련하게 남아있다. 한참 후에 어른이 되어 그날을 곱씹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왜!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화를 버렸을까...’
사실 물려준 이가 신을 대로 신고 한참을 묵혀두다 본인은 새것을 사며 나에게 물려준 축구화였던 것 같다. 가죽은 낡을 대로 낡았고, 빨래터에서 씻어서 신고 오던 때의 장면을 떠올리면 신발끈도 제대로 없어 발등 부분은 거의 열려 있었다. 무늬만 축구화지 거의 슬리퍼처럼 끌고 다녔던 것 같다.
부족하고 아껴야 하는 살림살이지만 엄마는 늘 깔끔하셨다. 무언가 지저분한 것과 철저히 분리하셨다.
그리고 엄마의 자존심 같은 것도 좀 관여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저런 설명을 좀 해주었으면....
당시 우리의 삶은
대화와 타협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