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빠가 떠나시고 6개월쯤 지났다.
이별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우울함, 무력감.
특히 구체적 이유 모를 분노감이 주체할 수 없었다.
이대로 더 있다간 아내와 아이들에게 까지
영향을 줄 것 같아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아내가 기분 전환이나 하자며 엄마에게 다녀오잖다.
다니기엔 먼 거리다.
자주 살피지도 못하니,
혼자 계신 엄마도 들여다볼 생각으로 겸사겸사다.
손자들을 앞세워 엄마집에 깜짝 방문을 했다.
“아이고 내 강새이들!!!”
아들, 며느리에겐 그저 반가운 눈인사만 스친다.
이러쿵저러쿵 여차 저차
아들 사정은 숨기고, 엄마 핑계만 둘러댔다.
.
.
.
.
“엄마 이거 못 보던 사진이네?”
“그거? 엄마, 아빠 처음 결혼하고 할아버지한테 절하는 사진.”
엄마는 벽에 사진을 자꾸 붙인다.
내 사진, 누나들 사진 그리고
아빠사진... 올 때마다 한두 장씩 늘어난다.
살면서 그렇게 싸우시더니,
떠나고 나니 벽에 자꾸 붙인다.
처음 본 오래된 흑백사진 사진 한 장.
사진 속엔 흰 무명옷을 입은 땅딸하고
까무잡잡한 웬 할아버지가 있었다.
왜소해 보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던 할아버지다.
“엄마~.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뭐 하셨는데?”
“너거 할배? 어시장에서 짐 나르는 지게꾼.”
.
.
.
할아버지의 생전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안 계셨던 분.
어느 가족이 추억하던 얘기도 들은 기억이 잘 없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뭔가 일순간에 내 머릿속 회로가
한쪽으로 정렬됐다.
분노가 파도처럼 치밀었다!
내 안에 무언가가 폭발하는 기분이다.
‘라떼’ 시절에 사연 없는 가정사가 어디 있겠냐만,
우리 집 가정사는 주사라면 남부럽지 않게 뿌리 깊은 집안이다.
떠나실 땐 미소 짓는 표정이었던 우리아빠.
그렇지만
나의 유년과 청소년기는 광기 어린 술주정과
부부싸움으로 가득 채워 주셨다.
“너거 할배는 100배는 더했다.”
“우리도 어릴 땐 니처럼 엄청 싫었다. “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했다.”
“근데 세상 살다 보니 술도 한 잔 묵게 되고...... “
어쩌고 저쩌고...
아버지 형제들의 무용담이다.
그렇다. 집안 내력이다.
그중에 우리아빠는 정말 적통을 이은 장남다웠다.
.
.
.
그 시절 우리 집의 모든 상황은
엄마 아빠가 싸움하기 위한 전개다.
뭘로 시작하든 늘 결론은 한결같았으니까...
까까머리 중학생시절, 혼자 집에 있는 어느 저녁이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땡~!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 리듬이 불규칙하다.
앗! 아빠다....... 벌써 불안하다.
엄마 아직 안 왔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해 비틀비틀 우당탕탕
아빠가 들어온다.
집을 쓱 둘러보시고는 한마디
"니애미는 어디갔노?"
"아직......"
아빠의 눈빛이 광기로 변한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술 취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히 가신다.
목적지는 안방의 엄마 화장대.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신다.
두어 번 더 밟으신다. 욕설을 퍼부으며...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건지...
유리병들이 파편으로 흩어지고
집안은 화장품 냄새로 가득 찬다.
다시 저벅저벅 저벅저벅
현관문 시건장치의 작은 버튼을 '똑' 하고 누른다.
“니애미 와도 문 열어주지 마라!!!”
“......”
.
.
한참 후
달그락달그락
엄마가 열쇠로 문 따는 소리가 난다.
열릴 리가 없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문으로 가
작은 버튼을 당기고, 레버를 조심히 돌린다.
엄마에게 눈으로 상황을 설명한다.
그런데 뒤가 싸~~ 하다.
술 취해 거실에서 주무시던 아빠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째려본다.
“나가라! 기~ 나가서 들어오지 말지 뭐 하로 기~ 들어오노!”
“와요? 나는 밖에도 못나가요?
엄마도 단번에 가시가 잔뜩 돋쳤다.
“뭐???!
“이 씨~~~.”
“아빠~~아 하지 마세요 ㅠ 아빠 하지 마세요ㅠ"
막장드라마 클리셰다. 아들은 매달려서 말리고,
말리면 더 심해지고, 그 광기의 화살은
결국 나에게 까지 향한다.
“니가 문열었제? 너거도 다 니애미 편이제?”
“에이~~~ㅅ~~~에이~~~ㅅ~~~”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우리아빠의 고함은
나에게 공포와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빠와 엄마는 맹수처럼 으르렁대며
서로를 할퀴었다.
나는 조용히 내 방에 문 닫고 들어가 귀를 막는다.
사흘이 멀다 하고 폭풍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지금 돌이켜보면 웃기지도 않는 사소한 이유들이다.
아직도 누나들과 모이는 자리에선 엄마 아빠의 다툼은
두고두고 안주거리이긴 하다.
그런데 아빠가 고함치던 그 소리.
어른 남자의 큰 소리는 내가 어른 남자가 된 이후에도
불안감의 트리거로 작동할 만큼
큰 자극으로 각인되었다.
.
.
.
사진 속 ‘어시장 지게꾼’
술기운을 빌려, 온 가족을 공포에 떨게 한 끝판대장!
얼굴도 못 본 손자의 우울증에 까지 영향력을 끼친...
그 대단한 분이
고! 작! 어시장 지게꾼이었다니!!
밖에서는 일감 주는 상인들에게 굽신거렸을테고,
돈 벌이는 적었을 테고,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
술 기운 빌려서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전했겠지.
그렇게 폭군처럼 군림할게 아니라
오히려 가족에게 미안해하고
보듬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인간성 아닌가?
나 같으면 적어도 나 같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싫었다. 너무 싫었다.
내가 이 사람의 손자이라는 것이 정말 싫었다.
옛날엔 다 그렇게 살았다?
삶이 힘들어서? 굴곡이 심해서?
개똥이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그렇게 행패를 부린다고??
장남인 우리아빠를
학교도 제대로 안 보내주며 일찌감치 일 터로 내몰았고,
술 먹고 가족 괴롭히는 비법은 고스란히 가르쳐 준!
타노스!!!
악마다.
.
.
.
나는 아빠와 헤어지던 그날까지도
우리 아빠 삶이 힘드셔서.... 그리고 고생하시는 우리엄마...
구슬피도 울었다.
어려서는 도움이 못 되는 것이 아쉬웠고,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었고, 그러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그들은 나를 키우며 힘들어했고,
나는 우리 가족이 함께 사는데 도움이 안 되는
부양되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
늘 가슴 한편에 나라는 존재가 미안했다.
아니......
자식에게 그런 부채의식을 갖도록
보는 앞에서 서로 힘들다고 그렇게 울어댔으니.....
정말 개똥이다.
억울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냥 술 먹고, 하고 싶은데로 성질내고,
집안을 부수며 살았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그냥 그랬다.
내 우울과 무기력과 분노에 대한 모든 원망이
한순간에 타노스에게로 향했다.
아니 타노스와 그 영향력 아래의 일가가 싫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나에게로 향한다.
분명히 나에게도 타노스의 피가 흐른다.
타노스의 피가 내 아내, 내 아들들까지 괴롭힐지 모른다.
이때부터 난, 자기혐오가 더욱 심해졌다.
이때부터 난...
내 마음속 감정이 제대로 꼬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