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2, 1은?
“2”
“2, 7?”
‘2+2+2+2+2+2+2......’
“14”
“2, 9?”
18
“3, 4?”
'3+3+3+3......'
“12”
"어이구 잘하네."
.
.
.
여섯살의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장면이다.
이때 우리아빠는 나전칠기공이었다.
습자지에 소나무, 학, 산, 꽃문양 등등을 그리고
밑그림이 그려진 습자지를 자개 판에 붙인다.
실톱을 이용해 밑 그림 모양대로 자개를 오려낸다.
아교를 녹여 칠이 된 목재에 오려진 자개를 붙인다.
자개를 붙일 땐 뜨거운 인두로 지져가며 단단히 붙인다.
실처럼 자른 가느다란 자개는 칼로 뚝뚝 끊어가며 소나무 잎으로 붙이기도 한다.
아교가 굳은 후엔 물에 붇려 습자지를 떼어낸다.
불에 녹이는 아교냄새, 인두로 지지는 냄새, 나무에 입힌 칠 냄새
공정을 꽤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아빠 옆에서 물에 불린 종이를 떼어내는 일처럼 간단한 작업을 놀이삼아 하곤했다.
그시절, 나전칠기 작업을 하는 아빠 옆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인가 구구단을 알려주셨다. 곧 잘 이해했던 거 같다.
답을 하면 아빠가 엄청 좋아하셨다.
그 호응에 신이 나서 대답했다.
외운 것보다는 더하기 더하기 더하기를 재빨리 해서 대답을 한다.
구구단을 주고받던 그날 오후,
옆동네 칠기 공방으로 아빠 손을 잡고 갔다.
십여분쯤 걸리는 거리였던 거 같다.
아빠는 공방에 있는 아저씨들과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를 들이켠다.
혼자 심심했다.
구구단도 혼자 되내어보고
땅에 아빠처럼 그림도 그려봤다.
공방 앞을 뛰어도 보고, 한발 깽깽이도 해본다.
한참이 지나도 그대로다.
아빠는 얼굴이 벌겋다. 걱정이 되었다.
아직 집에 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살짝 무서워졌다.
아빠 등에 가서 기대어 보기도 했지만
“가서 놀아라.” 귀찮은 듯 한마디…
.
.
.
서너 시간은 족히 지난 듯하다.
무료함에 지칠대로 지쳤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술에 취한 아빠는 이미 인사불성.
비틀비틀 내 손을 잡아끈다.
무섭고 싫었다.
아빠 손을 놓고 싶어 힘주어 빼보지만
그럴수록 손을 꽉 잡고 억지로 이끈다.
비틀비틀
들길을 지나고
돌길도 지난다
같이 안 가겠노라며 수도 없이 멈추어 섰다.
엉덩이를 아래로 내렸다. 낑낑대며 힘으로 버텼다
최선을 다해 불만을 표시했다.
술 취한 아빠는 어린 아들의 그런 마음을
보살펴 줄 정신은 없어 보인다.
울그락 불그락
급기야 나를 들쳐 매고 집을 향하신다.
집 앞마당에 나를 팽개치듯 내려놓으셨다.
나는 마당에 대놓고 드러눕고는 발을 굴렀다.
쪼그만 놈이 화가 많이 났나 보다.
역시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아빠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빨래방망이로 내 허벅지를 치셨다.
제법 아팠지만 소심한 매질이었다.
서러움에, 아픔에, 놀람에 힘껏 소리치며 울었다.
그날의 장면은 오래 남았다.
맞았던 기억 때문일까,
아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던 그 장면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내가 무서워서였을까.
명확하지 않지만,
그날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여섯 살 아들을 두 번 겪어본 나로서는,
그때의 아빠와 나를 함께 바라본다.
서툴고, 불안하고, 서로에게 기대고 싶은 존재들.
둘 다 미성숙한 시간 속에서
그저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갈 수 있다면, 그저 둘 다 꼭 안아주고 싶다.
그날의 냄새와 빛, 그 모든 기억을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