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태권브이

1984

by 브로카

어주 어릴 때의 기억이라

사실 여부가 일부 왜곡되어 있을 수 있음 미리 밝힙니다.

중요한 사건과 그때의 감정이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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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삼십 분째 안절부절이다.

시간이 다가온다.

며칠 전부터 기다린 시간이다.

이제 곧 텔레비전에서 84 태권브이가 처음으로 방영할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84 태권브이!!!


다섯 명의 가족이 콧구멍 만한 방 두 칸짜리 셋방 살던 시절이다.

주인집 호구 네와 우리 가족은 같은 대문을 쓰는 구조이다.

현대식 단층 양옥집에

호구네 집은 짙은 갈색의 세련된 알루미늄 새시에 유리가 끼워진 여닫이 현관문이었다.

우리 집은 호구네 집 우측에 터널과 같은 좁은 복도에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구조이다.

따로 현관문은 없었다.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사실 어느 집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호구네 집에 살던 시절과 84 태권브이이다.


주인집 호구네의 알루미늄 현관문 앞을 서성거렸다.

주인집 아저씨나 아줌마가 나와서 나를 발견하기를 기다렸다.

소리 내어 부를 용기는 없었다.

호구는 나보다 더 어렸으니 호구를 부르는 건 이상하다 생각되었다.

호구는 아마도 네댓 살밖에 안된 동생이었을 거다.


중요한 것은 우리 집 흑백텔레비전이

뭐가 문제인지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태권브이 방영 시간, 일요일 아침 10시!


호구네 집에서 누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84 태권브이가 할 시간이니

호구네 가족들도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이다.


우리 집은 나 말고는 그 누구도 태권브이에 관심이 없었다.

텔레비전이 나오건 말건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필요한 것을 누구에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부끄럼이 많은 성향 탓이기도 했겠지만,

미안함.

아마도 미안한 마음이었을 거다.

혹시나 내가 요청한 걸 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이 미안해할까 봐 그것이 미안해서 그랬다.

대부분은 내가 스스로 해결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빠른 방법 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결국 호구네 집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84 태권브이는 호구네 집 티브이가 있는 안방 바깥쪽 창가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끝까지 소리로 감상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노래와 함께

나도 마당을 날듯이 점프를 했다.

훈이의 기합소리가 들릴 땐 나도 발차기를 했다.

40년 전에 이미 4D 영화 감상이다.

대신에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했다.

뭔가 부끄러울 것 같았다.


아련히 기억나는 건

나를 비추는 햇살이 좋았고

기대앉은 호구네 집 벽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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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서

요청할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할 정도의 사리분별은 되지만

아직도 혼자 불편하고 말 일은 포기가 쉽다.


우리 집 귀여운 막내가 나를 닮았다.

혹시나 요구하지 못하는 부담을 줄까 봐

세심하게 살피려고 노력한다.


“점심 뭐 시켜 먹을까? 면은 시키지 말자.

배달로 오면 면이 뿔고 국물이 식어서 맛이 없으니 다른 메뉴를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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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베트남 쌀국수 먹을까요?”

“아빠가 면은 시키지 말자 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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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몰래 눈물을 훔친다.

……

……

……


“미안해. 아빠가 너무 단번에 거절했구나…

으이그~~ 우리 막내 아직 애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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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너도 언젠간 극복해야 해.

대신에 아빠는 천천히 기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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