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1)

1985

by 브로카

몇 해 전 피카추 빵을 구해달라는 아들의 요청에 온 동네 편의점 원정을 다닌 적이 있다.

소소한 놀이에도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고 싶다.

별 것 아닌 작은 유대가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아이들에겐 내가 가진 정서적 결핍을 남겨주고 싶진 않았다.

내 부모보다는 좋은 부모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내 아버지, 내 어머니보다 좋은 아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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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의 어느 날, 가난함을 보았다.


동그라미 종이 딱지가 유행이었다. 마분지에 만화영화 캐릭터가 잔뜩 인쇄된 30원쯤 하는 딱지를 두 벌 샀다.

큰 종이 두벌을 팔락거리며 신나게 집에 들고 와 동그란 딱지를 바탕지에서 떼어내고 있었다.


"새끼야! 니는 아빠 옷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가 안맡아지드나?"


큰누나가 쿡 쥐어박았다.

헛 돈을 쓴다는 누나의 타박이었다.


그때 우리아빠는 트럭 생선장수였다.

새벽에 어판장에서 갈치, 고등어, 메가리, 멸치 등등등을 상자 째 구매해 1톤 트럭에 싣고

엄마와 함께 이 마을 저 마을로 팔러 다녔다.


"메르치 사이소~ 메르치."

"메가리 사이소~ 메가리."


익숙한 멘트이다.


아빠가 집에 오면 온 집은 생선 비린내와 생물 삭은 냄새가 진동한다.

아빠의 바지 끝단은 늘 어판장 바닥의 물기에 잔뜩 젖어서 냄새와 함께 방바닥을 쓸고 다녔다.

아빠가 지나간 방바닥은 냄새가 났다.


그 시절 다 그렇게 살았겠지만,

잘 씻지도 않던 우리아빠, 장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

술에 취한 벌~건 얼굴로 술냄새와 비린내를 폴~폴~ 풍긴다.


"진~" 하고 부르며 덮석하고 막내아들을 안아주신다.

술 취한 아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았다.

최대한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아빠의 뇌관을 혹시나 자극하면

우리엄마 화장대는 쑥대밭이 될 것이 뻔하다.

엄마의 화장대를 멀쩡히 지키기 위해 최대한 비위를 맞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집에서 아빠를 조심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엄마다.

아빠의 뇌관을 끝까지 건드려서 기어이 터뜨리고야 마는 사람이다.

싸음의 주제는 늘 같은 레퍼토리다.

돈이고, 술이고, 냄새고, 짜잔한 아빠다.


딱지를 샀던 날, 누나의 타박도

그러한 배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사실 나는 동네에서 딱지 따먹기의 강자였다.

늘 풍족하던 딱지가 어느 날 '하파치기' 몇 번에 한 놈에게 다 넘어가 버렸다.

'하파치기'는 딱지를 쌓아놓고 손바닥을 오므려 그 위를 덮어 치고는

뒤집어지는 딱지를 가져가는 게임이다.

'하리씨(가위바위보)'를 해서 첫 번째 치는 놈이 무조건 유리하다.

딱지가 많이 쌓여있을 때 무조건 많이 넘어가기 때문에 첫방을 무조건 노려야 한다.

물론 게임의 진짜 재미는 마지막 몇 장 안남았을때 기술적으로 넘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날따라 '하리씨(가위바위보)'가 너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어쩌다 보니 딱지를 모두 다 잃고 말은 어느 날

딱지 두 벌은 내 자존심 회복이 달린 중요한 밑천이었다.

하~~ 큰누나!!

그런데 30원짜리 딱지 두 벌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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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딱지가 아니라, 가난이 남아있다.

똘똘하고 눈치가 빠른 나였다.

그즈음 언젠가부터 엄마, 아빠의 주머니 형편이 신경 쓰였다.

300원, 500원짜리 물체주머니, 탬버린, 캐스터네츠, 실내화,

받아쓰기 공책, 연습장 뭐가 뭐가 뭐가 이렇게 많은지...

엄마한테 미안한 돈 얘기를 해야 할 상황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어린 나는 엄마 아빠에게 돈 요청하는 것이 늘 어려웠다.

아빠 옷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의 의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아빠의 뇌관을 기어이 건드리고야 마는 엄마의 한숨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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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이 지난 지금...

지금 나는 아들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무게를 주고 있진 않을까...

나의 무거운 표정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주저함을 심어놓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도 아빠처럼 인생의 무게를 견디는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진 않나...

또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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