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극단적 비판
한때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도시재생 뉴딜'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칠 벗겨진 벽화, 인기척 없는 앵커 시설, 그리고 관리비 폭탄이라는 처참한 청구서뿐이다. 이제 그 빈자리를 '지방소멸'이라는 더 섬뜩한 공포가 채우고 있다. 인구가 증발하고 도시가 사라질 위기 앞에 서 있지만, 대응하는 방식은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진짜 위기를 해결할 '기획'은 죽었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는 '공사'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도시 문제 해결을 표방하며 등장하는 수많은 기획서들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그 안에는 "사람 중심", "장소의 혼", "공동체 회복" 같은 인문학적 수사(Rhetoric)가 가득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안이 거세된 철학은 공허한 공염불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의 기만이다. 온라인에서 몇 초면 검색 가능한 데이터는 차고 넘치지만, 정작 그 숫자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꿰뚫는 '실증적 추론'은 없다. "왜 사람이 떠나는가"를 과학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대신, 그 빈자리를 모호한 낭만과 당위성으로 채운다. '답'이 없는 두꺼운 보고서는 결국 건물을 짓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이러한 통찰의 부재는 현장에서 '보여주기식 행정'과 만나 기형적인 결과물을 낳는다. 과거 한글을 주제로 한 축제를 기획하며 이 참담한 현실을 목격했다. 한글 창제에 담긴 애민(愛民) 정신을 어린이 교육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담당자는 "ㄱ자, ㄴ자 모양의 조형물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라며 무시하듯 비난했다. 눈에 보이는 덩어리가 없으면 기획이 아니라는 1차원적 인식에 답변할 의지조차 없이,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광화문을 가보라. '가나다라마바사'가 끝없이 도배를 하고 있다. 광화문의 변화는 의미를 생각할수록 못마땅하다. 광화문이 가진 장소의 의미는 세종대왕 동상이 놓여지면서 뭔가 상서로운 결계가 풀린 평범한 조각공원이 되었다. 1968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후 장군의 구국에 대한 염원이 장엄한 상징성으로 지배하던 곳이었다. 조선 왕도를 상징하는 광화문을 지키는 ’ 호국의 신‘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곳.
서울시는 어느 날 뜬금없이 세종대왕 동상을 밀어 넣었다. 장소와 공간이 가진 고유한 서사와 맥락은 저잣거리에서 국밥이라도 말아먹었나!
비장하게 나라를 지키던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졸지에 광화문의 문지기로 전락시켜 버렸다. 위인이면 다 좋다는 식의 기계적인 '물타기'가 빚어낸 참사다. 상징성과 의미, 고유함 등의 가치는 그저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깊숙이 매장해 버린다.
최근 들리는 서울 시정 소식은 광화문을 더 이상 조선 왕도의 정문으로서 인정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역사적 권위의 상징으로서 세월의 가치는 조각 공원으로 격하시키고, 업자들의 배를 불려 가며 기어이 정신을 무너뜨리고 마는 이 대한민국의 천박한 문화인식... 되돌아봐야 의미가 가득하다.
우리의 천박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강 작가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한강 작가인가? K POP 스타들은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아이돌이었나? 그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피땀으로 이루어낸 성과를 그저 돈으로 환산하고 있는 우리의 천박한 인식. 그저 좀 알려진다 싶으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앞세워 어떻게든 돈이 되는 소스로 만들어 무임승차하려는 염치들은 어디서 그렇게 징그럽게도 쏟아져 나오는가...
도시재생 사업은 사실 사업의 이름과 담당 기관, 재원 구조는 조금씩 달랐지만 각 사업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한결같이 똑같은 진풍경이다. 공공디자인사업, 경관개선사업, 범죄예방디자인, 간판개선사업 등등등... 도시재생과 사업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결과물은 전국 어디를 가나 똑같다. 똑같은 자재와 디자인으로 도배된 획일적 풍경만이 남았다.
이러한 결과에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일부 관료와 교수, 그리고 업체의 '짬짜미 카르텔'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권으로 얽힌 심사위원과 업체 간의 이 공공연한 비밀 커넥션 속에서, 치열한 고민이나 차별화된 기획은 설 자리가 없다. 이 카르텔이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전국의 산과 바다마다 흉물스럽게 꽂혀 있는 출렁다리와 케이블카다. 솔직해지자. 대통령 앞에서 출렁다리와 케이블카를 비판한 한 연예인의 통찰력이, 책상머리에 앉아 카르텔의 단맛에 취해있는 도시계획가나 공무원들보다 훨씬 예리하다. 그들은 수십억 혈세를 쓰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직무 유기를 범하고 있다.
도시재생의 실패와 지방 소멸의 위기는 예산이 부족해서 온 재앙이 아니다. 호국의 신을 문지기로 전락시키고, 이권 카르텔끼리 짬짜미 하며 그저 돈만 좇은 욕망이 불러온 참사다. 이 참담한 현실은 붕괴 직전의 의료 현장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한 응급의학 의사는 이렇게 호소했다. "비까 번쩍한 병원 건물 지을 돈은 있어도, 정작 사람 살리는 의료 시스템을 거부하는 대한민국은 답이 없다."라고... 도시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앵커 시설과 출렁다리를 지을 돈은 펑펑 쓰면서,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과 콘텐츠를 만드는 '소프트웨어'에는 인색하다. 그나마 있는 콘텐츠들도 너무 똑같아서 현기증이 날 정도다.
학문적 통찰과 고민과 기획의 대가를 일당 인건비로 처리하며 무시한 결과 이제 우리의 삶은 부동산 투기와 함께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다. 껍데기만 화려한 병원에서 환자가 죽어가듯, 비까 뻔쩍하게 복붙 한 미분양 아파트가 점령한 도시에서 지방은 소멸해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현장을 해부하는 '외과의사의 칼날 같은 실증'과 '우리의 진정 행복한 삶을 바라보는 통찰'이다.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포장된 낭만 섞인 위로 따위는 집어치워라. 지금 도시에 필요한 것은 겉 치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