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대구에 살던 시절이었다.
좁디좁은 우리 집 방 한 칸을
엄마 친구라는 아줌마 한 분이 차지했다.
그 아줌마는 우리 집에서 꽤 오랜 기간 묵어 갔다.
처음 아줌마가 집에 왔을 때
흘깃 쳐다본 얼굴은
안경을 끼고 있었고,
얼굴 여기저기에 멍자욱이라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는
며칠 내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만 계셨다.
당시만 해도 안경을 낀 사람이 많지 않았던 때라
내 기억엔 금테 안경을 낀 아줌마...로
기억되어 있다.
그 아줌마가 누군지
무슨 일이 있어서 범상치 않은 얼굴로
우리 집에 묵게 되었는지
나에게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
혼자 많은 소설을 썼다.
유년기 남자아이기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야 뻔했다.
강도를 상상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와 길거리에서 주먹다짐을 했을 모습도 상상했다.
상상은 어릴 때부터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좋은 건수였다.
스토리가 제대로 연결이 되면 한두 시간 흘려보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줌마를 소재로 장편 드라마 몇 편은 뽑았던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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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으로 이사를 한 후 어느 날
우리 집 텔레비전과 가구 할 것 없이
큼지막한 세간살이에는 빨간색 딱지가 붙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는 하얀색 트럭이 한 대 서있었고
우락부락 아저씨들은 딱지가 붙은 세간들을
바쁘게 트럭에 실었다.
짐을 따라 트럭 앞까지 간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그때 그 아줌마를 보았다.
금색 테의 안경을 쓰고
무심하게 앞만 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쳐줘야 인사라도 할 텐데
시선은 한 곳만 응시했고
빼꼼히 쳐다보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텅 빈 방으로 들어오니
엄마와 큰누나가 씩씩 거리며 대화를 이어간다
은혜를 모르는 아줌마라는 뉘앙스였다.
.
.
.
순간 전율이 돈다.
오랫동안 다듬어왔던 장편 스토리가
일순간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아~!!
우와~~
상상 속 스토리가 종지부를 찍은 느낌이었다.
내가 상상한 액션이나 범죄스릴러가 아닌
치정과 금전이 얽힌
막장 드라마로 결론이 내려졌다.
뭔가 대단히 스펙터클 하지 않아 아쉬웠지만,
미스터리가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그날 세간살이가 사라진 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어딘가에서 유년시절의 고난 극복 '라떼'를 시전 해야 할 땐
아주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사건이었다.
매우 인식적으로 그러하긴 하다.
그 사건이 어린 나에게 체감되는 어려움이나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가
일순간 해소되는 실마리를 찾은 것이
더욱 큰 임팩트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