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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17. 2019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




‘영화’라는 매체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만큼은 아니더라도, 영화도 한해에 수백 편이 쏟아지는 시대. 옥석을 가리지 않으면 (우리는 제한된 시간으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볼 시간을 ‘그저 그런’ 혹은 ‘시간이 아까운’ 영화를 보느라 낭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 평론 사이트 들은 각기 다른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해 보곤 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영화 평가에 기준이 없는 편이다. 다행인 것은, 필자가 전문적인 영화 평론가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만점을 줄 수도, 이해할 수 없는 영화에 낮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가 있으면 단호하게 낮은 점수를 주는 대신 다시 한번 보는 편이다.) 만점을 주는 영화들 중에서는 가끔, 전문가의 혹평을 받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낮은 점수를 준 영화들 중에서는 천만의 선택을 받은 영화들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와 그저 그런 영화의 구분점은 예술성이나 대중성보다는, 감독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와 그 감독이 적절한 언어(장르)를 선택하여 잘 표현해냈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



원주민의 문명이 실제로 야만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침략자인 양키 놈들이 저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좀 그렇다. 출처: 아포칼립토


가까운 예로, 나는 <아포칼립토>를 매우 싫어한다. 영화적으로 접근했을 때 (예술적으로) 아주 잘 만든 영화이고 대중성도 갖추고 있지만,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사상 - 야만스러운 마야/아즈텍 문명에 대한 비난 - 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몇 년 전에 본 감상을 토대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지금 다시 보면 평가가 많이 바뀔 수도 있다) 반면,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는 감탄이 나오는 영화적 기법이나 천재성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우 호평을 하는 영화들 중 하나다. 모두가 데이비드 핀처나 폴 토마스 앤더슨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리처드 커티스의 <러브 액츄얼리>는 조금 어설프고 조금 투박하긴 한데, 너무 사랑스럽다.


크리스마스에는 이런 머저리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출처: 러브 액츄얼리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크리스마스의 마법처럼 온갖 사랑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동생과 아내의 불륜을 발견한 제이미(콜린 퍼스)는 휴양지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고, 영국 총리 데이비드(휴 그랜트)는 비서 나탈리(로완 앳킨슨)와 사랑에 빠진다. 미국 여자들은 영국 남자를 좋아한다며 위스콘신으로 떠난 콜린은 보란 듯이 여자를 꼬셔(?) 온다. 사실, 공감을 하기 어려운 스토리들이었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때문에 이 리뷰에서는 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줄리엣과 마크, 샘과 대니얼, 해리와 카렌에 대해서 풀어보려고 한다.



줄리엣과 마크,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네


애써 외면하는데 싫어한다고 하면 어떡하니...  출처: 러브 액츄얼리


사랑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도덕과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아무나 사랑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랑을 할 때는 가슴 아픈 상황도 있게 마련이다.


마크(앤드류 링컨)는 피터(추이텔 에지오포)의 절친이지만, 피터와 결혼한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을 남몰래 사랑한다. 여기서 막장드라마로 발전하면 두 친구사이의 암투가 벌어졌겠지만 영화의 장르는 크리스마스 로코. 마크는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 하지만 결혼식 비디오에서 줄리엣을 향한 마음을 들켜버리고 만다.


마크는 고민하고, 고민한다. 행복한 커플 사이에 끼어들어서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을 부정해 버려도 되는가? 마크는 온 힘을 다해서 사랑을 쟁취하는 대신, 그 유명한 ‘스케치북 고백’으로 마음을 전한다. 편지처럼 무언가가 남지도 않고, 따로 만나는 것처럼 대답을 들을 수도 없는, 무언의 고백. 이야기는 순식간에 눈 앞에서 펼쳐졌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다. 마크의 마음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릭 그라임스가 여자를 워커로 만들겠다며 협박을 하고 있다.  출처: 러브 액츄얼리


어떤 사람은, 마크의 이런 행동조차 불륜을 시도한 것이 아니냐며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불륜을 저지르고 싶었으면, 대답도 들을 수 없는 저런 방법을 사용했을까?


예정된 멈춤이었기 때문에 더 멋지고, 더 아름답다.  출처: 러브 액츄얼리


살다 보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웬만하면 그런 일은 피하는 게 좋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닌 놓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공멸을 향해 돌진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냥 순간의 욕정일 뿐인 게다. 그 사람의 사랑이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그 끝을 기다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타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노력은 부디 하지 않았으면.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샘과 데니얼


엄마가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는데 여자 생각뿐인 샘을 보니, 역시 아들 새끼는 키워봐야...  출처: 러브 액츄얼리



나이 어린 학생들이 사랑을 하고 있다 하면 늙은이들은 코웃음을 친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것들이 사랑을 논한다고. 본인들은 그들보다 굉장히 사랑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은 나이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 마흔이 되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고, 열여섯, 열일곱의 나이에 세상 다 산 애늙은이도 보았으니까.



네가 아직 취업을 안 해봐서 그렇구나. 다포 세대라고 들어봤니?  출처: 러브 액츄얼리


하지만 이 영화에서, 샘은 틀렸다. 꼬맹이의 말 치고는 꽤나 깜찍하지만, 사랑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년 후 다른 여자 따라다닐 확률 99%  출처: 러브 액츄얼리


샘은 사랑이 하나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 '단 하나의 사랑'을 긍정하기 위해 지난 모든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도 만나게 되지만 (보통 그런 사람들은 '나는 진짜 사랑을 해본 적 없어, 혹은 나는 사랑이 뭔지 몰라'라고 무게를 잡는다) 지난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은 당신과의 사랑도 부정할 게다. 지나가고 나면. 그런 사람과 뭔가를 나누고 싶은가? 나는 아닐 것 같은데.


샘과 데니얼이 함께 보는 <타이타닉>에서도, 잭은 죽고 로즈는 살아남아 자식과 손주까지 보고 산다. 물론 꽁꽁 얼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잭을 보는 로즈에게 사랑은 하나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데니얼에게도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듯. 그러니까, 지금 사랑이 떠나갔다고 해서 너무 낙담하지 마시라. 당신이 준비가 되었을 때, 아마 새로운 인연이 찾아올 거다. 사랑은 하나가 아니니까.


와이프 죽은 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너무 빨리 반하는 데니얼. 그리고 그 여자 이름은 캐롤이야.  출처: 러브 액츄얼리



불륜의 함정에 빠진 해리,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카렌



해리는 직원들에게 꽤 다정한 사장이다. 세라가 칼과 이어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자 나서서 등을 떠밀어주기도 하고, 새로 온 직원 '미아'에게도 잘 적응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준다. 하지만 그 다정함 때문에 미아는 해리를 손쉬운 타깃으로 인식하고, 과감하게 해리에게 대시한다.


해리는 금목걸이를 샀지만, 카렌은 그걸 선물로 받지 못했다.  출처: 러브 액츄얼리


결국, 미아의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주겠다'라는 말에 넘어가 해리는 금목걸이를 아내 몰래 구매한다. 하지만 카렌은 해리가 무엇을 샀는지 궁금해서 주머니를 확인하고, 그곳에 금목걸이가 있는 것을 확인한다. 당연히, 자신을 위한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카렌.


하지만 막상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금목걸이가 아닌 '조니 미첼'의 앨범이 들어있었다. 자신에게 주려고 산 것이 아니라면, 분명 다른 누군가, 아마 높은 확률로 회사에서 그에게 꼬리를 치는 '미아'가 받은 거겠지. 조니 미첼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난다. 저런 것도 남편이라고. 나는 평생, 변함없이 소중한 남편으로 그를 대했는데.


이런 상황에도 침착하게 남편과 대화하는 카렌. 존경스럽다.   출처: 러브 액츄얼리


상대방이 불륜,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이라 짐작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대체로 달콤하고 희망적이지만, 이런 커플의 모습도 보여준다. 처음만 힘든 거다, 한번 눈 돌아간 사람이 두 번은 돌아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 사실을 발견한 순간 해리와 카렌의 결혼생활은 끝이 난 걸까? 길고 긴 이혼 절차를 밟아, 반쪽이 된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할까?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부부라면 마땅히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 혹은 호기심이라는 것은 끝끝내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는 함부로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내게 가장 잘 맞는 해답은 나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용서도, 다시 한번 믿어주는 것도 카렌의 선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언이랍시고, 타인을 위해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려 준다. 하지만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고,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사람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확실히 너무 오만하다. 불륜이나 바람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보이면 안 된다 하는데, 글쎄. 그게 과연 행복으로 가는 최선일까?


18년에 걸쳐 사랑을 완성한 star-crossed lovers, 제시와 셀린느도 불륜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출처: 비포 미드나잇


20년을 행복하게, 헌신하며 살아왔다. 서로가 서로를 버팀목으로 삼아, 따뜻한 애정으로 감싸며.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외도를 들킨다. 둘의 사랑과 세월은 모두 부정되는 것일까? 인간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 나약한 인간이 40년, 5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할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차라리 더 판타지 같다. 게다가, 그 사람은 ‘내’가 결혼을 하고 싶어 했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지 않던가? 나 말고도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을 거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바람이나 불륜 따위를 옹호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건은 사건이고 사랑은 사랑이라는 거다. 사건이라고 하니 불가항력적인 어떤 것처럼 표현되는 것 같아 불륜남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 본인도 그 행위의 의미- 그것이 세상 가장 소중한 이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그  일이 마침내 일어났을 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진 말자는 거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



그 이외에 기타 등등


재미 삼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력을 보자. 깜짝 놀랄 얼굴들이 많을 것이다.

내연남 킬러  출처: 워킹 데드


프로도 삼촌  출처: 호빗 트릴로지


PPL 전문 배우  출처: 트루먼 쇼


님 매너요  출처: 킹스맨


딸바보  출처: 테이큰


릴리 바보.  출처: 해리포터 시리즈


왕의 남자  출처: 왕좌의 게임



마법사를 싫어하는 마법사.  출처: 닥터 스트레인지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출처: 어바웃 타임


알고 보면 반갑지만, 대부분의 경우 영화 속 이미지와 크게 다른 캐릭터를 잡아 알아보기가 조금 힘든 편이다. 특히 앤드류 링컨은 완전 딴사람처럼 느껴져서, 영화를 다시 보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다 (..) 이런 쟁쟁한 배우들이 모이는 것은 이런 옴니버스식 로맨틱 코미디에서만 가능한 일인 듯. (모두가 조연이 아니라 모두가 주연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도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캐스팅이 <러브 액츄얼리> 못지않다.)


<러브 액츄얼리>는 분명히 완벽하거나, 최고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영화를 꼽는다면 반드시 러브 액츄얼리를 그중 하나로 꼽을 듯. 특히, 크리스마스라면 말이다. 크리스마스의 달달함이 필요하다면, 다시 한번 이 영화를 꺼내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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