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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khur Sep 02. 2024

싱가포르 여인 (1)

L 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S와 함께 싱가포르 강변을 거닐던 5 년 전의 밤이. 다음 날이면 싱가포르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S와 기약도 없이 헤어져야 했다.


C 은행의 싱가포르 지사로 발령을 받고서 5 년을 꽉 채웠다. 싱가포르에 머무는 지난 5 년 동안, L은 업무 때문에 무수히 많은 한국 교포들을 만났다. 이 작은 도시국가에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처음 왔을 때 채 100개도 안 되던 한국식당이 이제는 150 개를 훌쩍 넘어섰다는 것.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개선된 듯하다. 덩달아 한국식당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대부분 음식의 맛도 조금씩 현지화가 되곤 하는데, 꿋꿋이 한국의 맛을 지켜내는 곳도 꽤 있다. 인사도, 주문도, 오로지 한국말을 쓰는 고집스러운 곳 말이다.


L은 동료와 함께 소위 ‘치맥’을 먹으러 어느 한국식당에 간 적이 있다. 한국식 치킨뿐 아니라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도 팔았다. 몇몇은 저녁에 육류는 한사코 안 먹는다기에 세 종류의 찌개도 같이 주문했다. 찌개와 소주는 서로 궁합이 맞는다고 하며 비싼 소주까지 시켜서 치맥 파티의 판이 그만 커져버렸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을 때다. 이구동성으로 주문이 제대로 전달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이유인즉슨, 치킨은 그럴싸한데, 찌개는 죄다 국물색깔도 맛도 거의 똑같았던 것이다.  김치찌개에는 김치가, 된장찌개에는 해산물이, 순두부찌개에는 순두부가 들어간 차이라고 할까?

하물며 주인도 중국계였다.

스피커에서는 연신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벽면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듯한,  소주나 맥주 광고 사진이 사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무늬만 한국식당이었다.

이런 식당들 때문에 한국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주지나 않을까 L은 걱정부터 앞섰다.


곧 다시 올 기회가 생길 거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L조차 그날이 언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약속을 지키게 된 셈이지만, 무려 5 년씩이나 걸릴 줄이야.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금세 흘러간 것이다.


내일, 마침내, S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나중에 건설된 투아스 쪽이 아니라 우드랜즈 쪽에서 그들은 만나기로 했다. 다리를 지나면 입국심사대가 있는 JB센터랄이 나타나고, 시티몰 사이에 가로놓인 육교가 바로 그들이 만날 장소였다.


주말이면 말레이시아로 가는 이 두 개의 다리는 북새통을 이룬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말레이시아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넘나 든다.

체크포인트 앞에 한없이 길게 늘어선 수 백대의 오토바이 행렬을 보고 있자니, 생경하면서도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체크포인트 앞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입국심사를 받은 후 다시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내려와야 한다. 버스 승객들은 이제부터 길고 기나긴 줄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승용차도 이에 못지않다. 싱가포르에 비해 물가가 싸기에 'S'로 시작하는 싱가포르 차들은 주말만 되면 모조리 말레이시아를 향하는 듯하다. 조호르 바루(JB) 시에는 유난히 쇼핑몰뿐 아니라 정비소나 세차장, 자동차 인테리어 가게, 미용실 등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게다.

그러고 보면 싱가포르에서는 거의 정비소나 세차장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엄청난 교통 체증을 뚫고 괜히 국경을 넘어 말레이시아 쪽에서 만나자고 한 걸까?


처음 연애를 할 때의 두근거리던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L은 괜스레 설렌다. 둘 다 가정이 있으니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고 서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시선에선 불륜으로 비칠 수도 있을 테니까.

술좌석에서 우스갯소리로 L 은 말하곤 한다.

결혼한 지 20 년이 지났건만 한 번도 바람을 핀 적이 없었다고. 떳떳하게, 그것도 의기양양하게.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이면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볼멘소리로 말한다. 세상에 그런 흰소리가 어디 있냐고? 몸은 줘도 마음은 준 적이 없다는 게 L은 흰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6 년 전이다. L은 은행에 방문한 S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한국 전통의 음식점을 내겠다며 대출을 상담해 왔다. 공정한 심사 끝에 원하는 자금을 융통해주고 난 뒤다. 고객관리 차원에서 제대로 개점을 했는지 찾아보게 되면서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다. 무엇보다 S가 운영하는 한국식당은 고향의 맛이 솔솔 풍겨서 자주 찾았다. 외려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적인 맛이었다고 할까?


L은 서류심사를 하면서 S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고, 마침내 친구로 지내자고 먼저 제안했다.


가끔씩이지만 서로 만날 때마다 친구란 사실이 너무 좋았다. 서로에게 존댓말을 안 써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편안하고 푸근했다. 갈 때마다 S는 반갑게 인사하며 종업원에게 시켜 서비스도 얹어줬다. 친구 하나는 잘 둔 듯했다. 손님도 없는 야심한 시각에는 한자리에서 오래 속엣말도 나누곤 했다. 친구가 아니라면 혼자 술주정하는 L의 말을 묵묵히 들어줄 리도 없다. L은 누나 같기도 한 S가 너무 편했다.


그렇다면 LS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가 아닌 여자에게 마음을 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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