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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khur Sep 09. 2024

싱가포르 여인 (13)

L은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기고 일어섰다. 한국에서는 10만 원 넘게 줘야 하는데, 이곳의 마사지 비용은 그 반의 반 값이다. 왜 마다하겠는가?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발 마사지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발바닥을 지압하듯 뾰족한 나무로 찔러대는데 얼마나 아팠던지.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는 사이에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그저 불가사의할 뿐이다. 말초신경을 세게 자극하면 멀뚱멀뚱해질 것 같은데, 심지어 잠이 오다니. 어떻게 아픈 데를 척척 알고 마사지를 하는지도 신기하다. 그만큼 마사지의 세계는 신비, 그 자체인 듯하다.


그랩에서 가까운 마사지 가게를 고르고 호출하자 금세 차가 왔다. 마사지를 두고 워낙 퇴폐니 뭐니 해서 혹시나 편견을 가졌을까 봐, 차 안에서 L은 넌지시 애들 얘기도 해줬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딱 한 번 가족이 놀러 왔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함께, 그 아름다운 언덕이 있는 '부킷인다'에 갔다. 예외 없이 어느 마사지가게에 가서 가족 전체가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받고 나온 애들도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출장 갔을 때였다. 마침 방학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며칠을 묵었는데, L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마사지를 받았다는 게 아닌가? 벌써부터 중독이 된 걸까? 성장기 아이들에게 안 좋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윽고 마사지 가게에 도착했다. 커플 같이 보이는 중년의 한 쌍이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왔으니 의례히 같은 방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L은 S가 혹시나 불편해할까 봐 다른 방을 달라고 했다. 그곳 직원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능히 그럴 만도 하다. 커플방은 없고, 독방은 하나밖에 없으니 단체방도 괜찮냐고 묻는다. 고개를 주억거리자 우리를 단체방으로 안내했다, 우리 옆자리는 커튼이 쳐진 채였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자 어느덧 해는 서편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은은히 불그레한 기운이 저 너머에 얼비친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어간다는 얘기다. 5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싱가포르 여인과의 짧은 해후는 이렇게 서서히 종착역에 이르고 있었다.


L은 서로의 이성친구에 대해서는 혼전부터 아내와 숱하게 얘기를 나눴다. 만약 남자든 여자든 단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각자의 이성친구를 멀리해야 한다면, 혼전의 인간관계는 반 토막이 나는 셈이다. L의 아내도 이에 순순히 동의했고 지금까지 서로의 이성친구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편이다. 결혼한 지 어언 20 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성친구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다. 무엇보다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고 사랑하면 그만이다.


S도 수많은 이성친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S가 나왔다. 고작 한 시간이었는데도 엄청나게 아팠다고 하소연했다.


“넌 왜 마사지가 좋아? 난 다른 사람이 내 몸을 만지는 게 너무 싫었어.”


S는 마사지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가 보다. 마사지 마니아인 L은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뼈와 뼈 사이의 연골이 약해서 꾸준히 운동으로 땀을 흘려야 하는 체질이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마사지를 통해서라도 몸을 부드럽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해줄 상황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른가 보다며 여겼을 뿐이다.


머뭇거리고 있자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내처 말한다.

이윽고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S의 입술 사이에서 기어이 새 나왔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 딸과 만나기로 한 곳까지는 같이 가줄 거지?”


이해심도, 배려심도 많은 훌륭한 S의 딸을 다시 보지 않고 이렇게 훌쩍 가버리는 건 엄마의 친구로서 예의가 아니다. 길치인 S가 제아무리 택시를 타더라도 만날 장소에 제대로 갈지도 의문이고. 다시 그랩을 부르자 채 5 분도 안 돼서 나타났다.


S는 시티몰 입구에서 딸과 미셀을 만나자, 오늘 즐거웠다고 하며 L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세 여인은 나란히 싱가포르로 가는 택시를 향해 총총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기나긴 5년 만의 해후는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S를 보내고 L은 생각했다. 또 한 번의 5년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싱가포르 여인’으로 남아준다면 재회의 기회는 언제고 다시 올 테지. 통영에 무척 가보고 싶은데, S가 고향에 갈 때 꼭 한 번은 함께 가보고 싶다. 늘 클래식 실황연주에 목말라 있으니까,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릴 때 혼자서라도 가볼 수 있겠지만.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며칠 후 메시지 하나가 바다를 건너왔다.


“내일 쉬는 날이라서 인도네시아 빈탕의 리조트를 예약해서 딸이랑 같이 왔어. 지난 한 주는 많이 힘들었어. 감기 때문에 목이 붓고 기침도 심했고. 오늘에서야 좀 나은 듯해. 지난번에 다시 봐서 좋았어. 넌 여전히 좋아 보이더라.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너랑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셨을 텐데,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다음 생에는 동성친구로 만나자.”


L은 동성친구란 말이 오래오래 귀에 맴돌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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