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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khur Sep 08. 2024

싱가포르 여인 (12)

S가 습관적으로 카페라테를 주문했더니, L은 커피숍의 선택을 존중하듯 "Coffee of the day"를 주문했다. L이 에스프레소 기계로 추출한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S는 익히 안다. 유난히 싱글 오리진을 즐겨 마시는 것도.


문득 L에게 어떻게 비칠까 궁금하기도 하여 S는 먼저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던 차에, 다행히도 L이 먼저 말을 꺼낸다. 그런데 그 말이 가슴을 찌르며 S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 참 집요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왜 이렇게 고생만 하고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지 못하냐고 핀잔하는 투였다. S는 L의 진심을 알기에 그다지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L이 무척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아가는 듯해서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스스로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넌 애들이 제 길 찾아서 언젠가 곁을 떠나면 뭘 하고 싶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막상 L이 이런 질문을 해오자 멈칫거렸다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생각을 차근차근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굳이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게 더 맞겠다. 부지런히 돈 벌어서 애들 교육시키는 게 전부였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아마도 L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뀐 듯도 하다.


호텔 커피숍이라서 그런지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목이 아플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에 숱한 얘기들이 오갔다. 커피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실내는 냉방처럼 추워서 몸이 오돌오돌 떨린다. 화장실 가는 길에 잠시 밖에 나오니 후텁지근하다. 15년째 이런 기후에 살아도 쉬 적응이 안 된다.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면서, 너무 낭비하듯 실내온도를 잔뜩 낮춘 게 아닌가도 싶다.


하긴 10여 년 전에 처음 부기스에 갔을 때다. 쇼핑몰 입구 주변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왜 이렇게 더운 나라에서 사람들이 바깥에서 서성일까? 자세히 보니 건물 바깥에도 찬 공기를 마구마구 뿜어대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진풍경이었다. 에너지 낭비니 어쩌고 하면서.


“난 식당은 접고 지금 하고 있는 다른 사업 하나는 계속하려고 해. 그 일은 단속적이라서 시간 활용도 훨씬 낫거든. 굳이 호화롭게까지 살 마음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려고 해.

얼마 전에 딸과 둘이서 1박 2일로 센토사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어. 낮에는 루지도 타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다가, 밤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만찬도 즐기고, 스카이라운지에서 오붓하게 얘기도 나누고. 참 좋더라. 공해 상에 점점이 떠있는 무수한 배들이 만든 풍경도 신기했고.

너처럼 감성 충만하지는 않지만, 여유롭게 살고 싶어. 애들이 모두 결혼하면 혼자라도 갈 거야. 빈탄이나 발리의 리조트에 가서 다이빙도 하고, 해변의 파라솔 아래에서 얼음 재운 콜라를 마시면서 책도 읽고.”


L은 가만히 S의 얘기를 경청했다. L은 회사에서 제공한 '생애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한 꼭지가 건강이었는데, 언변이 수려한 한의사가 강사로 오셔서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이 들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게 혈당인데, 될 수 있으면 콜라는 절대 드시지 마세요. 독약이라고 생각하시면 딱 맞습니다."


한의사의 간절한 충언을 넣어 한 마디 거들려다가 말았다. 핵심에 벗어난 얘기니까.


중간중간에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놀란 눈을 뜰 때는 마치 S를 무슨 대단한 사업가로 생각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건 결코 아닌데. 그래선지 L은 이런 말로 화답을 했다.


“나중에 빈탄이나 발리에 갈 때 나도 좀 데려가 줘. 나도 늘어지게 자고,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면서 넋을 좀 잃기도 하며, 지나간 내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말이야.”


S는 대답 대신에 가녀린 미소만 내비쳤다.

주문한 커피도 다 마시고, 조금씩 목도 아픈데 아직 딸을 만나려면 무려 세 시간이나 남았다.


L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지난 15년을 다시금 찬찬히 떠올려 봤다. 이제 9 월이 되면 딸은 대학교에 들어간다. 그런데 무려 4개 국어를 할 줄 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더니, 혼자서 말레이어도 익혔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처럼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나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최소한 두 개 언어는 구사할 줄 안다. 이를테면, 중국계는 만다린과 영어를, 말레이계는 말레이어와 영어를,

인도계는 타밀어와 영어를, 하는 식으로.


다행히도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어만 쓰게 한 덕분인지 딸의 한국어 발음은 상당히 정확하다.

피아노 연주도 잘하고, 초등학교 때는 수영선수도 했다. 플루트를 배운 오빠와 함께 집에서 협연을 할 때는 내심 흐뭇했다. 이럴 때 노래라도 곁들이면, 소위 가족 음악회쯤 될 텐데. 만약 우리 애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차마 상상하기도 싫다. 다룰 줄 아는 악기나 운동은 고사하고, 입시지옥에 갇혀서 창백한 얼굴에 무미한 십대를 보냈을 게 자명하다.


큰 애도 싱가포르 국립대학인 NUS에 입학한 후 교환학생으로 UCLA에 유학을 갔고, 막내도 이번에 NUS에 합격했다. NUS는 누구나 쉽게 가는 곳인가 여겼는데, 주위에서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이름도 비슷한 서울대학교 SNU 보다 훨씬 낫다고들 하니까. 사실, 애들이 공부할 때는 전혀 아끼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점에 가서 정보를 얻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은 모조리 사 왔다. 착하게도 애들은 S가 사 온 책을 거의 모두 소화시켰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애들 모두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모름지기 학교에 흥미가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스스럼없이 수업시간에 자는데도 선생은 이를 방관하고, 하교 후에는 과외 돈을 들여서 학원에 다니는 한국 학교의 이미지는 전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까, 싱가포르에 온 이래 애들이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학교에 가면 아이비리그처럼 클럽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리더십도 키운다.

수시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운다. 모두가 하나씩 악기를 연주하고 신나게 스포츠를 즐기며 심신이 튼튼해지는데 어찌 재미있지 않을 텐가. 애들 모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준 건 부모의 훈육결과라기보다 싱가포르의 교육제도나 환경 때문일 것이다.


학원강사였던 남편은 지금도 가계에 도움은커녕 S가 힘들게 번 돈을 조금씩 축내고 있다.

그나마 싱가포르 이민을 결행한 게 유일하게 가장 노릇을 한 것일 테다.


화장실에 다녀온 L이 다시 자리에 앉자, 내 생각도 저절로 플래쉬백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조금 늦은 걸 보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 모양이다. 멀리서 냄새가 조금 풍기는 듯하다. 담배를 피우면서 뭔가를 생각해 냈는지 묻는다.


"시간도 어중간한데 같이 마사지받으러 갈래? 내키자 않으면, JB 어디든 가보고 싶은 데 있으면 가고.”


S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난생처음이지만 마사지 한번 받아보지 뭐. 딱히 갈 데도 없고 말이야. 요즘 어깨가 좀 욱신거리기도 하니.”


둘은 커피숍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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