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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khur Sep 07. 2024

싱가포르 여인 (11-2)

L 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따가운 햇살을 피해 호텔 로비로 S와 함께 들어섰다. 호텔 1층에 있는 커피숍은 주말인데도 한적했다.


“요즘에도 두 개의 사업을 계속하고 있니?”


커피숍 창가에 앉아 커피를 주문한 후 L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얼굴을 제대로 본다. S의 얼굴에는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다. 어떤 때는 화가 난 얼굴로 보이는데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미소를 지을 때도 짐짓 저음이 들리곤 한다.


“아직 딸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계속 벌어야지. 큰 애는 지금 미국에 유학 중이라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차라리 미국처럼 성인이 되면 부모 슬하를 떠나 독립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어.”


한국의 부모는 자녀의 대학교육뿐 아니라 결혼 자금까지 왜 부담해야 하는 걸까?

사회보장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 노후를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늦게 본 아이들이 장성하여 결혼까지 챙기려면 앞으로 십 수년을 더 경제활동에 매진해야 한다. 자식에게 쏟는 게 너무 부담되는 건 부인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L은 그래도 S가 은근히 부럽기만 하다. 물론 다른 고민이나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어쨌든 맞벌이를 하고, 혼자서 두 가지 사업을 동시에 하니까. 그나마 L보다는 경제적으로 한결 나을 듯하고, 무엇보다 애들이 다 자라서 이제 곧 제 앞가림을 한다는 것도.


“그래도 사업을 두 개나 하니까 몸이 힘들지 않아? 이제 우리도 나이를 생각하고 자기 인생도 즐기면서 살아야지.”


L은 속으로 흠칫했다. 정작 내 인생은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면서 훈계하듯 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S는 대수롭지 않게 되받아줬다.


“아까 봤던 막내만 졸업하면 그렇잖아도 일을 하나로 줄여서 여유 있게 살 생각이야. 얼추 4,5 년만 더 고생하려고 해. 그런데 내가 보기엔 매번 해외를 떠돌아다니는 네가 더 안쓰러운데?”


S는 예리하게 내 상황을 꿰뚫어 봤다.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잦은 아빠의 부재로 엇나가는 애들을 생각하면 L은 절로 한숨부터 나온다. 어떻게 된 게 출장만 갔다 오면 애들이 번갈아 가며 L을 번뇌와 수렁 속에 빠뜨린다.

학교에 수 차례 불려 가야 했고, 자존감이 떨어졌다며 휴학하겠다고 생떼를 쓰고. 불러 앉혀서 얘기라도 나누려고 하면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부모의 말은 한 귀로만 들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난 10년이 지나야 해방이란다. 막상 해방이 되면 어디가 탈이 나도 날 듯해. 그때는 더 배배 꼬일 것도 같아. 그래서 지금 적당히 타협점을 찾는 중이야. 부모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찾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되도록이면 감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


막상 말을 시작하니까, L의 말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봇물이 터진 둑처럼.


“책, 영화, 음악이나 여행은 수그러드는 내 감성을 지피거나 이어주는 매개쯤 될 거야. 때로는 자극이 되거든. 마음을 위무하기도 하고, 누긋이 반성하게도 만들고. 어떤 때는 내 생각이 그릇되었음을 따끔하게 일깨우기도 하더라.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깨지고 무너져야 또 한 단계 자라는 듯해.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예외 없이 말이야. 어떤 때는 내 사유의 틀이 헐겁고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해. 그래도 좌절보다 거기서 희망을 보려고 애써.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현묘한 데가 있는 것 같아. 결코 한꺼번에 모두를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조금씩 조금씩, 나이와 더불어 하나씩 하나씩,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겨우 허기를 모면할 양만큼 채워주는 것도 같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이미 욕망은 깊숙한 곳에 갇혔는지 그림자조차 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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