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로 꽃피우는 나무

by 박호

뿌리로 꽃피우는 나무

박 호


나무의 꿈은 꽃이다

사람의 꿈은 사랑인 것처럼

고목의 꽃을 못 본 것은

겉으로 곁가지만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뿌리로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다

꽃은 꽃가지에만 핀다고 믿는 것은

나무의 뿌리를 눈여겨본 적이 없어서

그 상처를 모르는 까닭이지

상처도 치유될 때에는 꽃처럼 피어나고

빛 들면 꽃이 된다는 것을

엄동에 부르터서 시린 옆구리

해묵은 뿌리의 상처 때문에

봄과 여름 사이 그 어느 즈음에

나뭇가지는 꽃 피우는 일을 멈추었지

바람 탓이었다

지난겨을 스산한 바람이

갈라진 몸통 그 틈새로

뻥 뚫린 바람길 따라 아래로

속 깊은 뿌리로 스며든 까닭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은 꽃이 아니다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라도

슬퍼하지 않는다

세월에 묻히고 잊어져서

꽃처럼 아름다운 화석이 된 그 꽃의 밀알

나무가 뿌리에 숨겨둔 비밀을

아직은 말할 수 없어도

먼 훗날 그때는 말하리라 이것은

뿌리로 꽃피우는 나무의 꿈이었노라고.


2019 <겨울 없는 봄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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