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밭 - 백윤석

by 백윤석

글 쓰다

지친 이는

와서 쉬란

그 말 믿고


몰려온 문객들이

괴나리봇짐 푸는 사이

붓대 다

꺾어놓았네,

시절 고이 잊었네

- 「겨울 연밭」 전문

문객들에게 있어 진초록 연밭과 흰 연꽃은 힐링의 공간임에 필자도 공감한다. 내 사는 곳과 좀 떨어지긴 했지만 틈을 내어 무안 백련지를 보고 와서 글쓰기에 몰두한 일도 있어서이다.


보아하니, 늦봄부터 가을철까지 글쟁이들이 너도나도 찾아와 “괴나리봇짐”을 풀어 연에 대한 글을 다투어 썼는가 보다. 그래 “붓대” 같은 줄기들을 문객들이 “다 꺾어놓고 갔다”고 일러대는 것이다. 시쳇말로 다 써 먹어버려 이제 쓸 게 없는 글감이 되고 만다. 그것도 모르고 연밭을 찾아간 게 하필이면 황량한 “겨울” 복판인 줄이야. “지친 이는 와서 쉬란 그 말 믿고" 왔는데 이런 낭패와 맞닥뜨린다. 먼저 온 문객들은 무성한 연밭을 계기 삼아 글을 쓰기도 했지만, 붓대와 같은 연줄기를 다 꺾어놓을 만큼 연의 사연들을 이미 다 써먹고 떠나버려서 더욱 시샘이 난다.


시조에서 대응된 사물은 ‘붓대’와 ‘연대’이며, 시인의 시절이 호응을 함께한다. 그러나 화자는 글 수확이 다 끝난 황량한 벌판에 자기만 남았음을 느낀다. 그렇듯, 겨울 눈바람에 연대가 꺾인 그 앞에, 결국 쓸 소재가 바닥난 자기를 이야기하는 에두름으로 부러진 연대를 말하는 생태적 품세가 걸작이다. 그나저나 허허로운 겨울 연밭일망정 이 같은 한 수를 건져 보는 건 큰 소득이지 않은가. 바람이 휩쓸고 간 연밭에서도 이삭은 남아 그로 하여금 이리 줍도록 연밭은 배려한다. 예컨대 “시절 고이 잊었네”라는 멋진 종장 구처럼 굵은 알뿌리로 말이다.

-시평, 노창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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