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메일 - 백윤석

by 백윤석


1.

한 톨 씨앗 잎눈 뜨는 문패 없는 내 뜨락에

잔뜩 덧난 상처마냥 몸 불리는 메일들이

용케도 바람벽 넘어와

술술 옷을 벗는다


끊임없이 거듭되는 공복의 내 하루가

한 순간 눈요기로 허기나마 면해질까

꼿꼿이, 때론 덤덤히

삭제키를 눌러댈 뿐


2.

눈발처럼 떠다니는 많고 많은 인파 속에

어쩌면 난 한낱 눈먼 스팸메일 같은 존재

무참히 구겨진 채로

휴지통에 던져질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외로 선 골방에서

팽개쳐져 들어앉아 변명조차 잊었어도

엉켜진 오해의 시간

술술 풀 날 기다리는,


백윤석 「스팸메일」 - 전문



좋은 시조는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3장 6구 12마디는 유기적 체계로서 다채로운 변용과 변주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은 바둑의 수가 무궁무진한 것과 같다. 시조의 전개 유형은 시인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스팸메일」은 특별히 주목되는 작품이다. 네 수 한 편이면서 두 수씩 묶은 점도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팸메일」은 첨단 인터넷 시대를 급박하게 살아가며 겪고 있는 일상의 애환을 밀도 높게 노래하고 있다. 구절구절이 실감실정이다. 시종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명징하게 형상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소재로 볼 때 서정성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육화 하는 과정에서 밀도 높게 실존적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 ‘어쩌면 난, 한낱 눈먼 스팸메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을 여실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되겠다.


그러나 결구에서 자존의식을 견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인다. 즉 ‘엉켜진 오해의 시간/ 술술 풀기 기다리는,’이라는 마무리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점이다. - 시평 이정환 시인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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