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부호, 느루 찍다

by 백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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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 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 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 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백윤석, 「문장부호, 느루 찍다」- 전문


백윤석 시인의 데뷔작이기도 한 위 시는 시조를 쓰는 과정과 문장부호를 조화롭게 연결하여, 시조를 천천히 무르익게 만들어 가는 시인의 자세를 형상화하였다.


화자는 시조를 쓰며 “바람 한 점 낚고 싶”지만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고 만다. 그럴 때는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운다.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내면에서 어수선하게 떠드는 몇 구절을 ‘초장’에 쓰고, 중장은 “쉼표 촘촘 찍”으며 천천히 이어간다. 그러다가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처럼 종장에는 느낌표를 찍으며 마무리한다.


시조를 쓸 때 화자의 정서 변화같이 읽히기도 하지만, 실은 시조 장르가 지닌 호흡이나 보편적인 전개 양상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층적 의미에 문장부호를 배치하여 감각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시조’에 대한 진지한 시인만의 감수성으로 ‘시조’의 감각적 세계를 펼쳐 보인 수작이다. - 시평 김태경 시인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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