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는 교양 있고 부유하며 아름다운 젊은 청년이다. 그는 예술가 바질 홀워드를 매료시키며 순식간에 그의 예술적 뮤즈muse 가 된다. 바질은 도리언을 신화에나 나올 법한 고대 그리스 영웅처럼 묘사할 만큼 그의 <젊음> 과 <아름다움> 을 숭배하게 된다. 이는 그의 친구 헨리 워튼 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현란한 말솜씨로 도리언을 홀린다. 도리언의 존재로 인해 예술적 기질이 정점에 오른 바질 홀워드는 인생의 걸작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 를 그린다. 도리언은 바질의 우상숭배적 애정이 깃든 이 초상화를 혐오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신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을 것인 반면, 초상화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한창 헨리 워튼 경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관한 찬사에 영향을 받고 있던 도리언은 영혼을 걸고서라도 초상화 속 젊음과 아름다움이 자신에게 영원히 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후, 그는 헨리 워튼 경이 미치는 영향에 따라, 점점 쾌락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런 와중에 그는 런던 슬럼가의 허름한 어느 극장에서 시빌 베인이라는 아름다운 배우를 만나게 된다. 시빌 베인은 도리언 그레이의 본명조차 알지 못했지만, 둘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시빌 베인은 도리언을 사랑하게 되면서 연기자로서 재현하는 사랑과 '진짜' 사랑 간의 차이를 알게 되고, 이후 연기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도리언은 인간 시빌 베인이 아닌, 연기하는 '예술 작품' 으로서의 시빌 베인을 사랑했다. 그래서 연기력이 형편없어진 시빌 베인에게 흥미가 떨어진다. 둘은 이별하게 되고, 이로 인해 시빌 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빌 베인의 죽음 이후 도리언은 초상화의 변화를 감지한다. 자신이 어두운 마음에 물들어 양심을 저버릴 때마다 자신의 실체가 아닌 초상화가 그 대가를 감당하게 됨을 알게 된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품은 초상화를 누가 볼까 두려웠던 도리언은 초상화를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겨 둔다. 시빌의 죽음 이후 근 이십여 년간 도리언은 점점 더 쾌락에 빠져든다. 초상화는 점점 더 흉측해진다. 시빌 베인의 동생인 제임스 베인이 도리언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한다. 바질 홀워드는 도리언을 교화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도리언에게 살해까지 당한다. 그는 결국 아편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쾌락을 탐미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흉측한 초상화를 없애버리겠다 다짐하고 초상화에 칼을 꽂지만,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건 도리언 그 자신이었다.
참, 눈앞에 있는 상대를 존재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바질이 도리언에게 보여준 우상숭배적 사랑, 헨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도리언에게 자기중심적으로 끼친 영향, 도리언이 시빌에게 보여준 존재 아닌 재현물에 대한 사랑, 시빌이 도리언에게 보여준 꿈속 "아름다운 왕자님" 에 대한 비현실적 사랑,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정부로 남은 시빌 베인 어머니의 사랑.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랑의 양상들 가운데 제임스 베인이 엄마와 누나에게 보여준 진심 어린 걱정만이 진짜 사랑으로 여겨진다.
초반부터 헨리 워튼의 궤변과 위선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작품이다. 사실 그는 당대 런던의 도덕적 엄숙주의와 위선을 비꼬며 쾌락과 아름다움을 찬미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쳤다.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도리언과 다르게 쾌락을 '실천' 하진 않았으니 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시빌 베인의 죽음 이후 18년간 끊임없이 도리언 그레이가 그의 지인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젊고 아름답기 때문에" 세간의 중심에서 도리언 그레이를 몰아내지 않은 런던 사교계의 위선 또한 주목할 만하다.
런던 귀족들이 내보이는 위선의 상징물이자 정점은 시빌 베인과 그 가족이다. 시빌 베인의 어머니는 어느 귀족의 정부情婦 이다. 아이 둘을 낳아도 끝내 정식으로 혼인할 수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빌 베인은 자신이 처한 가난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꿈속에 살며 연극으로 도피한다. 누나인 시빌 베인과 달리, 동생 제임스 베인은 극도로 현실적이다. 아버지를 비롯한 귀족들의 위선을 경멸한다. 제임스 베인은 입만 살아서 도덕이니 예술이니 떠들어대는 런던의 위선적인 귀족들과 달리 세상사를 몸으로 경험하며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한다. 연극적 몽상 속에 사는 엄마와 누나를 걱정한다. 자아가 없어서 이 배역 저 배역에 잘 몰입할 수 있었던 시빌 베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언으로 인해 현실 사랑을 깨닫고 사랑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를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때부터 '예술 속에 살아야 하는' 배우로서의 삶도 도리언 그레이로부터 받을 사랑도 끝이나 마찬가지였다. 누나의 죽음 이후 복수를 위해 제임스 베인은 18년간 집요하게 누나의 "아름다운 왕자님" 의 뒤를 쫓으나, 도리어 그가 먼저 죽게 된다. 그의 죽음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상류층의 아무것도 아닌 사냥놀이에 불과한 과정 속에서 잘못 맞아 죽게 되는데 '실수로' 그를 죽인 귀족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작품은 '예술을 위한 예술' 에 관한 찬미주의적 서문으로 시작한다. 시기가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그가 살았던 당시의 런던은 디킨스의 소설이 풍미하던 시대였다. 즉 이성과 도덕을 계몽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이 사용되던 시기에 그 어떤 것의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 을 하자는 와일드의 입장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예찬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발현되는 귀족들의 위선과 악영향 또한 작품 속에서 이중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순백의 때 묻지 않은 소년이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이란 환상 속에서 핏빛 쾌락의 나르시시즘에 젖어 파멸하는 이야기. 도리언 그레이가 초상화를 숨긴 곳은 자신의 어린 시절 생애가 보물처럼 숨겨져 있던 곳이었다. 성장하면서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순수함과 (진짜) 젊음이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못한 채 먼지로 뒤덮여 있던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 자신의 내면 속 양면성을 숨긴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나의 젊음과 아름다움의 피상성 아래에 내 진짜 내면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듯이. 물론 본인조차 몰랐겠지만.
끊임없는 여성혐오적 묘사는 아쉬웠으나, 쾌락과 탐미주의적 선언 속에서 역설적으로 선과 양심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ㅡ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