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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May 16. 2023

특성 없는 남자

책 <특성 없는 남자 1>, 로베르트 무질 저


사실 도입부 묘사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다섯 번을 읽었다. 도입부는 지상이 아닌 상공을 묘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서양 상공에서부터 동쪽으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상공의 모습을 '상공에 위치한 자' 의 시각에서 묘사한다. 이후,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묘사를 이어 나간다. 이는 흡사 영화에서 버드아이뷰Bird's Eye View 앵글로 묘사되는 관찰 기법과 유사한데 이런 기법은 대체로 전지적 (초월자의) 시점을 은유하기 때문에 작가 또한 이런 점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선이 상공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후에는 한 근대 도시가 묘사된다. 이 도시는 "전체적으로는 건물, 법, 규정, 사회적 관습이라는 항구적 소재로 만들어진" 인류가 만들어 낸 여느 평범한 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1-1장 부제인 「 여기서는 어떤 일도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 로 보건대, '여기' 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이 근대 도시를, '어떤 일' 은 인간의 규범과 관습을 벗어난 어떤 특별한 일을, '주목할 만한 방식' 은 역사적으로 다르다고 생각될 만한 별난 방식을 의미하지 않을까. 더불어 역설적으로 사실은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상상도.


1-2장의 부제인 「 특성 없는 남자의 집 」 은 주인공이 사는 환경을 묘사한다. 그가 위치한 공간은 17세기와 18세기의 역사 위에 19세기가 덧대 전근대와 근대가 혼재된 공간인데 그 모습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일그러져 있다. 작품에 따르면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유목 시대의 산물" 이나, 사실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의식하는 것부터 인간의 자의식이 발생하고 나름의 <특성> 이라는 게 생겨난다는 점에서 이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수치' 로 정확하게 '측정' 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런 건 크게 보면 중요한 게 아닌 걸지도 모른다.


특성 없는 남자의 '특성 있는 아버지' 는 구시대적 유물과 다름없으나 내 생각에 이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자라며 자리 잡기까지 거쳐온 모든 관계와 감정을 귀하게 여긴다. 그는 함께 해온 이들 삶의 면면을 추억하며 관계적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 그는 "개인적 이익의 토대가 되는 것," 즉 관계와 공동체와 사회를 숭배한다.


1-4장은 「 현실감각이 있다면 가능성감각도 있어야 한다 」 로 현실감각과 가능성감각에 대한 정의와 비교와 대조를 이어나간다. 뭔 개소린가 싶지만 한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는 전제로 말미암아 이해해 보려고 머리를 싸맸다. (모더니즘 작품이니 그딴 게 없을 수도 있다) 현실감각이란 무엇일까. 이는 여태껏 겪어온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며, 우리는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를 판단한다. 현재에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을 기준 삼아 당위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능성감각이란 그런 토대가 주어지지 않아도 된다. 가능성감각에 따른 인간은 역사적 사실과 현실적 당위의 반대편에서, if 라는 마법 지팡이를 가지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이러면 어떨까?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의 상상의 날개짓을 한다. 이런 점에서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실재하는 현실을 기반한다. 이런 특성을 제거한 관념적 존재가 바로 '특성 없는 남자' 가 되는 것이 아닐까 ··· . 라는 게 1부 초반까지의 생각.


어제오늘 읽던 <소송> 을 끝내겠다 다짐했었으나 아 맞다 독파 챌린지 신청했었지, 라는 생각이 스쳐 이 책의 1-1장을 읽었고 이게 뭐고, 라는 생각과 함께 1-4장까지 읽다가 계획이 틀어졌다 ㅠㅠ 상당히 영화스러운 작품 같고 얼마 전에 읽은 <근대 시·공간의 탄생> 에서 언급된 모든 것에서 맥락을 제거하고 수치화하는 근대라는 게 이런 모습인가? 싶었다. 책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다 읽고 감상을 한꺼번에 정리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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