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 은 초보 운전자가 숙련된 운전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담백한 문체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일상적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운전이라는 행위, 차, 도로, 네비게이션, 도로와 관련된 사회 · 문화적인 담론으로 뻗쳐 나간다. 단순히 무서워서 운전 배우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 부담 없고 가벼워서 호로록 읽을 수 있다.
첫 면허를 따던 때가 떠오른다.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다는 생각에 속상해서 충동적으로 등록했던 면허 수업이었다. 연수 시간 12시간. 새벽 5시 50분에 시작하는 2주간의 수업. 내게 "합격입니다" 라는 소리는 '운전 가능자' 라는 또 하나의 삶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면허를 따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상은 호락호락하게 열리지 않았다. 본가는 초보자가 운전하기에 악명 높은 도시인데, 열두 시간 외에 추가로 열 시간을 더 받았음에도 실제로 운전을 해보니 몸으로 체감이 됐다. 네비게이션에 없는 길이 있는가 하면 잘 가다가 길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갈라지기도 했다. "거기서 거기로 가면 어떡하냐" 라는 옆자리 언성 높인 핀잔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미숙한 운전 탓에 결국 사고가 났을 땐 자괴감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전을 놓지 않았다. 1년간 거짓말하지 않고 정말 365일 내내 운전을 했다. 억지로 꾸역꾸역 각종 난코스로 악명 높은 교차로를 거쳐 다녔다. 고가도로 때문에 네비도 읽어내지 못하는 길을 지나며 혼자라는 두려움에 많이도 울었지만, 포기하면 그때부터 정체도 아닌 도태될 거란 두려움 때문이었고, 이 두려움을 견뎌야 했던 지난날의 내가 안타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는 늘 모든 일정이 대중교통의 막차 시간이 기준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몇 분이 걸리는지,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는 아닌지 등의 자잘한 고민이 내 삶을 지배했다. 낯선 타인과 부딪힐 수밖에 없고 냄새와 코로나 이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전염성 질병 등의 요소가 거슬렸다. 그러나 운전은 그것들 중 많은 것을 해소해 주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창문을 열어 환기하며 운전을 할 수 있었고, 피곤한데 앉을 자리가 없진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이어폰이 고장 나면 차량 블루투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짐을 싣고도 육체적 피로 없이 이동이 가능해졌고, 휴일에 어딘가로 가고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운전해서 가곤 했다. 어린 시절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직접 경험의 반경을 스스로에게 선사한 셈이었다.
책에서 특히 공감이 갔던 부분은 운전해서 갈 수 있는 도로만큼 내 삶의 주체성도 확장된다는 것이었다. 분명 세상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어떤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운전이라는 행위를 '금지' 당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나를 위해 선물한 이동하는 나만의 공간> 은 나 자신과 내 삶에 관한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영화 <타이타닉> 을 보고 로즈가 다이아몬드를 수장시키는 장면과 잭과의 꿈속 재회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만, 액자 속 로즈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장 속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로즈의 '배에서 내린 후의 삶' 은 말로, 자동차로, 경비행기로 확장된다. 분명 차를 가지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내게 면허를 따느냐 마느냐는 스스로의 한계와 직접 경험의 반경을 결정짓는 문제였다. 어린 시절 집에 차가 없어서 부모를 통해 어깨너머로도 배울 수 없었던, 그렇지만 남들 다 아는 세계. 시작부터 오롯이 내 선택과 내 의지만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던 세계는 정말로 내 삶과 마인드 자체를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강아지가 사경을 헤매며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 택시를 잡고자 발만 동동 구르기보다 재빨리 아기를 데리고 대형병원으로 갔던 때를 기억한다. 보험료 및 유지비 때문에 돈은 많이 깨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운전할 수 있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겠느냐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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