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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01. 2023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 존재 앞에서 우리는

책 <소송>, 프란츠 카프카 저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서른 살 생일이 되던 날 아침 요제프 K는 자신의 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에 의해 이유를 알 수 없는 죄목으로 기소 당해 체포 된다. 그는 감금당하진 않았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은 이상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도대체 어떤 죄목으로 누가 그를 기소한 것인지 알아보려 해도 법원이란 존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미궁과 같은 모습으로만 보인다. 실제로도 요제프 K에게 이 법원이란 공간은 미스터리하고 기이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심리에 참여하러 가도 논지에서 벗어난 이상한 말만 늘어놓는 하급 법관,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비웃는 사람들 등의 존재가 이러한 괴이함에 도를 더한다. 친척 어른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소개받아도 그 또한 쓸모없는 정보만 제공하며 시간 낭비를 할 뿐 그가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지는 않는다. 결국 그는 서른한 살 생일, 사형을 당한다. "개 같군!" 이라는 유언과 함께.


작품이 전반적으로 음산하고 기묘하며 미스터리하다. 처음에는 판타지인가? 싶기도 했다. 주인공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죄목으로 기소 당해 자기 집 안방에서 체포당한다. 그는 이제 막 성공가도에 오르려던 젊은이였으나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점 일상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혐의를 파악하고 죄를 벗어내기 위해,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법이라는 체계의 실체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노력하나 실체는커녕 수많은 법의 <문지기> 들만 마주할 뿐이다. 문지기들은 요제프 K를 상대로 관료주의적 태도로 알량한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또한 법에 종속된 처지이며 한편으론 자신들은 반은 자유로운 요제프 K보다 못한 처지" 임을 알지 못한다.


작품은 일 년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부터 모순적이고 부조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삶의 면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소송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여성 편력을 드러내는 모습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상인이 결국 변호사의 개가 되는 모습을 보며 아 그래서 결말에서 개 같군이라는 말을 하는구나, 싶어 한탄스럽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성당에서> 장의 <법 앞에서> 라고 일컫어지는 문지기 전설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다. 추후에 재독 할 때 이 장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췌

[...]  법 앞에 문지기가 하나 서 있다. 시골에서 한 남자가 찾아와 문지기에게 법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자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 있겠지요.》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요.》 법에 이르는 문이 여느 때처럼 열려 있는 데다가 문지기가 옆으로 비껴 섰기 때문에 남자는 그 틈으로 문 안을 들여다보려고 허리를 구부린다. 문지기가 그것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면 나를 제치고 한번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내가 힘이 세다는 걸 명심해 두시오. 나는 가장 말단 문지기에 불과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힘이 센 문지기들이 서 있소. 세 번째 문지기의 얼굴을 나는 쳐다보지도 못했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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