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Jun 04. 2023

다이아몬드를 꿈꾸는 흙 속 뼈 조각

책 <에브리맨(everyman)>, 필립 로스 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을 읽었다. 이름 없는 어느 주인공의 이야기이자 여느 평범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였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 느끼고 생각할 보편적인 삶의 면면을 루페로 들여다보고 나온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어느 한 남자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단 몇 분이면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 흔해빠진 죽음. 그렇기에 그를 잊을 수 없는 누군가에겐 가슴 사무치도록 아릴 죽음. 죽음의 추모를 위해 죽은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장례식에 모여 그가 맞이한 '죽음' 이라는 현실을 각인한다. 그와 관련된 기억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엔 죽은 이의 생애가 담겨 있다.


장례식에는 그가 버렸던 자식들이 있었다. 평생을 그를 향한 적대감에 몸부림치던 그들은 그가 죽은 후에야, 적대감 아래 묻어 두었던 감정을 마주한다. 그건 아마 '나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양가적인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장례식에는 그가 존경하고 사랑하던 형이 있었다. 그리고 형의 존재는 죽은 이의 아버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에브리맨everyman 이라는 보석상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두 자식에게 물려줄 무언가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운영하던 보석상이었다. 아버지는 평범한 보통 사람에게 '다이아몬드' 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런 '평범한 보통 사람' 을 위한 보석상을 유지하던 사람이었다. "아름다움과 품위와 가치를 넘어선 썩어 없어지지 않을 불멸의 다이아몬드. 죽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이 그걸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다니!" 평생 한쪽 눈에 루페를 끼고 변치 않을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를 들여다보던 아버지. 두 아들에게 루페는 곧 아버지의 삶이자, 아버지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평생 종교를 믿지 않으며 종교는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어 어머니 곁에 묻히던 날, 평생 '어머니, 아버지' 라는 이름 외에는 그 어떤 존재로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육신을 떠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종교가 거짓말이니 아니니 하는 그의 믿음은 문제조차 될 수 없었다.


흙은 죽은 아버지의 모든 구멍을 틀어막았다. 눈, 콧구멍, 입, 귀를 비롯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생명을 빨아들이는 통로, 어쩌면 연장 기계를 부착해 생명을 이어 나갈 수도 있는 구멍들. 흙은 그 모든 구멍들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흙으로 덮여, 흙으로 돌아간 맨몸의 인간에게는 뼈 밖에 남지 않는다.


아버지가 죽어도 그의 삶은 이어졌다. 사랑, 탄생, 이혼, 증오, 후회 등의 숱한 순간들을 겪는다. 그러나 삶의 그 어떤 즐거움도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막을 순 없었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파도처럼 물밀듯 치고 들어오는 노화에 있어서 그는 감히 맞서 싸울 수조차 없었다.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없는 취급 하며 모른 척 살고자 해도, 도처에 도사리는 죽음을 피할 순 없었고, 흙 속 작은 구멍 안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작품의 말미는 죽음을 살아있음으로부터의 벗어남, 즉 존재의 해방으로 표현한다. 한 사람의 삶이 죽음으로 끝맺음 지어지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걸까. 살아생전 자신과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음에도 아버지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길 바라는 그의 딸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아버지는 당신의 부모를 사랑했으니, 그분들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어딘가에 혼자 계시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에브리맨everyman, '평범한 사람들' 이라는 의미의 주인공인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보석상 이름. 그것은 어쩌면 다이아몬드를 꿈꾸지만 흙 속 뼈 조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보통의 모든 삶을 위한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금 문학을 읽는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해봤던 것 같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느 누군가의 삶을 살아보는 것. 좁은 직접 경험의 반경으로는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어느 누군가의 감정을, 생각을, 삶의 면면을 들여다 보고 그와 일체화시켜 보며 내 삶을 돌이켜 보는 것. 그러면서 내 안에 또 다른 존재의 가능성을 늘려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연습이 필요하기에 어떻게든 꾸준히 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 존재 앞에서 우리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