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사생아로 태어나 수녀원에 버려지다시피 한 주인공 마리 드 프랑스는 수녀원장이 되면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여성들만을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울고, 그들을 위해 무기를 들며, 그들을 위해 환경을 개혁해 나가는 마리. 수녀들에게 그런 마리는 왕이자 교황이나 다름없는, 존재 자체로 혁명인 사람이었다. 마리는 수녀들의 현실적 고통에 직면하여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에 휩싸일 때는 성서의 모든 문구를 여성형으로 바꾸곤 한다. 자신들이 이루어 낸 지상의 유토피아는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녀들을 위해서임을 되새긴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라 마리의 죽음으로 끝을 맺은 이야기였으나, 오히려 마리의 죽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마리가 죽은 후에도 생애 내내 바랐던 유토피아적 이상이 수녀들의 삶 속에 구현되었다는 걸 볼 수 있었기에. 이브로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여성의 역사 속에서 지금 나와 함께 현존하는 자매들을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자에 관한 이야기.
발췌
[...] 살구씨는 약하고 가녀린 잎을 틔우고 더 크게 자라려고 몸부림을 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그 씨앗이 나무가 되는 것에 달렸다고 느낄 것이다.
[...] 이곳에서는 마리의 권위 말고는 누구의 권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녀원이 늘 존재해 온 이 땅에 계속 살겠지만, 그녀의 딸들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 미로에 둘러싸인 채로 안전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끼리만 오롯이 지내며 자급자족할 것이다. 여자들의 섬이 되는 것이다.
[...] 마리는 수녀원을 1인치도 이동시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뱀과 딸들 사이에 큰 바다 같은 길을 만들었다.
[...] 마리는 부수녀원장에게 그런 바보 같은 소리 말라고, 땅은 권력이며 수녀원에 있는 여자보다 힘이 더 약한 자는 없다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느리고 고통스럽게 얻어낸 그 권력을 파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 마리가 고다, 비록 동정 마리아는 여자로 태어났으나 자궁에서 태어난 인간 중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하고 말한다. 우리의 동정 마리아는 자궁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도록 선택받은 가장 완벽한 그릇 아닌가요?
[...] 해를 거듭하면서 마리는 수녀원의 고해신부가 될 것이다. 고해를 들으면서, 그녀의 분노는 그들의 편에서 더욱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 마리는 고해신부가 됨으로써 신과 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때문에 실망한다. 이렇게 하면서 소명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기에. 하지만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각자의 비밀이 공유될 때마다 수녀원장에 대한 수녀들의 사랑이 점점 커가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 그들의 슬픔이 마리를 너무 무겁게 내리눌러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마리는 종종 필사실로 내려가 라틴어로 된 미사전서와 시편을 여성형 단어들로 바꾼다. 여자들만 듣고 말할 글인데 안 될 게 뭐 있는가? 그녀는 그렇게 바꾸면서 혼자 웃는다. 남성형 단어에 줄을 그어버리고 여성형으로 대체하는 것은 사악하게 느껴진다. 재미있다.
[...] 수녀원을 확장할 필요성은 그녀 자신의 몸을 확장시키는 것과 같았다. 그녀의 행동은 늘 자신이 속세에서 살았다면, 자유가 주어졌다면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 이 공동체는 소중하고, 여기엔 심지어 가장 많이 미친 사람, 버려진 사람, 까다로운 사람을 위한 장소도 존재하고, 이 울타리 안에는 가장 사랑받지 못한 여인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도 충분하다. 기타의 삶은 얼마나 짧고 외로웠는가. 잔인한 세속의 세상에서 길을 잃고 고립되어 살았던 사람. 여기 자신을 사랑해 준 자매들 없이 살아야 했다면, 그녀가 이 결함 많고 힘든 삶에 가져온 아름다움은 아주 적었을 것이다.
[...] 서서히, 수녀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그들의 생각은 기도가 된다. 그리고 일도, 시간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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