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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17. 2023

그 밤, 목적지 없이 끝없이 달리는 기차 속에서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저


아직 완독 하지는 못했지만 읽는 내내 설레고 벅찬 작품이다.


서구 유럽에서 독재에 맞서고자 하는 정치적 혁명이 일었던 상징적 도시인 리스본으로 향하는 주인공. 정치적 중립국의 시민이라는 정체성은 한때 자기 앞에 있는 책 속 세상에만 파묻혀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외면하는 걸 정당화하는 수단이나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어쩌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목적지 없이 끝없이 달리는 밤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고, 마주해야 하는가. 목적과 방향을 정할 수 없는 열차는 불확실한 삶과 같지만, 터널을 뚫고 맞이한 밤의 끝자락에는 빛과 내일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발췌

[...]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스치며 지나가는 밤의 만남처럼 언제나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추측과 생각의 단상과 날조된 특성들만 우리에게 남겨두는 건 아닌지. 만나는 게 사실은 사람들이 아니라, 상상이 던지는 그림자들은 아닌지.


[...]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  그가 사랑하는 고전은 각자의 삶을 산 인물들로 가득했고, 그 책들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의 삶을 읽고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포르투갈 귀족 그리고 조금 전 다리를 절뚝이던 저 남자의 삶이 왜 지금 이토록 새롭게 느껴지는가.


[...]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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