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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15. 2023

그들은 결코 그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책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저

어쩌면 살아 있는 게 더 끔찍할지 모를 새하얀 스탁필드의 겨울은 이선 프롬의 발목을 족쇄처럼 옭아맨다. 가난한 집안은 그가 꿈꾸던 세상으로의 도약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짓누르기에 충분했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로 이어지는 병간호로 인해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죽느니만 못한 삶이 된다.


이선은 어머니의 병간호를 맡던 사촌 지나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떠날 기미를 보이자 스탁필드에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휩싸여 지나에게 결혼을 제안했다. 충동적인 제안은 평생을 그를 옥죌 족쇄가 된다. 사랑 없는 결혼. 이선은 이내 곧 지나에게 냉담해지고 지나는 병치레를 하며 '투덜'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숨 막히는 현실은 이선으로 하여금 맷과의 새로운 삶과 자유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욕심으로 지나의 발목을 잡아 스탁필드에 가둬두고 짐짝 취급하는 이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의 투덜댐이나 다름없었다. 꺼져가는 자신을 향한 눈빛이 조카 매티를 향해 반짝이는 걸 보며 지나는 어떤 심정을 느꼈을까. 맷이 지나의 그릇을 깨고 이선이 맷의 행동을 변호해 주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에 신음하는 이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스탁필드에 남기로 결심했던 지나의 마음이 곧 그 그릇과도 다름없어 보였기에. 스탁필드의 사람들은 이선 프롬이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 을 난 거 같다며 그의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운명을 동정하나 나로서는 청교도적 사회상 속 가난과 은근한 가부장적 환경에 짓눌린 탓에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속병이 난 지나가 가엾기 짝이 없었다.


가난과 운명에 짓눌려 이상을 좇지 못한 한 남자의 기구한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들 하나, 그에 의해 발목이 끊어진 또 다른 삶에 더 눈길이 갔던 이야기. 운명은 가혹했고, 그들은 결코 그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발췌

[...]  저이는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을 난 것 같아.


[...]  지나는 가혹한 현실 때문에 실체가 없는 그림자처럼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


[...]  지금 모습을 봐서는 농장에서 사는 프롬네 사람들이나 무덤 아래 있는 프롬네 사람들이나 이렇다 할 차이를 모르겠어요. 저 땅 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다는 사실을 빼놓고는 말이지요. 그곳에서 여자들은 혀를 꼭 붙들고 있어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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