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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11. 2023

언어와 삶의 연관성에 관하여

책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내면의 울림을 외재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면서 세상과 개인을 매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소설 <언어의 무게> 주인공 레이랜드는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을 문학 작품과의 분투 속에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 더 나아가 언어와 삶과의 연관에 관해 아주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영향 아래 문학과 언어는 그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고 더 나아가 생계 수단이 되었다. 지적이고 진보적인 출판사 딸 리비아와 사랑에 빠진 그는 리비아가 활짝 열어준 세상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출판사를 물려받은 아내 리비아는 카리스마 있고 연대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리비아와 레이랜드 슬하의 딸과 아들 또한 각각 의사와 법조인인 엘리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엘리트 집단의 언어를 통한 특권의식화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이는 주인공 레이랜드에게 오진을 내리고도 사과하지 않는 의사의 오만함, 안락사 문제를 둘러싼 작가의 중심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작품은 단어의 음성학적 차이에 따른 다른 느낌 표현의 차원을 넘어, 언어가 한 사람의 영혼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으로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다루고 있다. 특히 러시아라는 제국의 압제 하에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인물의 사연과 그가 모국어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썼던 부분이 굉장히 뭉클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안락사 문제를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루는데 죽기 직전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이의 죽음을 조력한 자에게 '처벌을 내린다' 라는 게 합당한가에 관해 작가가 굉장히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레이랜드는 오진으로 인해 아내가 물려준 출판사를 잃었지만, 이는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을 알아야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언어와 삶의 관계를 통찰한 주인공이 이제 스스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창작 행위를 하게 되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임에 분명하다.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한 사람에게는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생애 소중한 인연과 기억을 놓지 않겠다는 투쟁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레이랜드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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