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른 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고여 있지 않은가 생각하곤 한다. 그럴 때면 우울한 기분을 떨치고자 책을 읽곤 한다. 그중 문학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세계문학을 통해 인류 보편의 정서나 생각이 무엇인지,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를 알게 되는 것에서 많은 위안을 얻곤 한다.
책 <세계문학 오디세이아> 는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 삶에서 사랑이란 어떤 의미인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이란 무엇이고 신과 인간의 관계가 어찌 설정되는지, 신으로부터의 탈피를 감행한 계몽된 인간이 들어선 근대라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그 속에서 주체와 타자 · 존재와 비존재 · 구조와 비구조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며, 자본주의 · 식민주의 · 실존주의 등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다시 '무엇이 인간인지' 를 세계의 다양한 문학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 처음에는 각장의 소제목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아했는데, 읽다 보니 시대 흐름에 따라 인류가 몰두했던 화두를 문학적 비유로 상징한 것이었다. 우선 각장을 면면이 살펴보면 초반부는 인류 문명 전반을 강에 비유하는 듯했다. 이 강은 두 존재를 가로지르는 강으로, 한 존재는 반대편 존재인 타자에게 닿기를 갈망하면서도 어쩌면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심취한 것이기에 끝내 닿지 못한다. 그리고 그 (닿지 못한) 사랑은 문학이 되며, 문학이 어떻게 자아를,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더 나아가 그들을 가로지르는 강물과 같은 세계를 그려내고 내보이는지를 보여준다.
강에서 시작된 자아의 여정은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 이라 이야기하며, 그를 둘러싼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씨족) 사회로 눈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전근대 가부장 사회가 어떻게 유전자를 확장시킨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였는지를 살핀 후, 여성의 역사에서 자기만의 방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자기만의 방' 을 가진 근대의 개인은 이제 신의 질서로 이루어진 사회의 규범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책은 신 없는 신성을 탐색하며 고독과 구원을 탐색한 카프카의 작품을 탐색하며, 근대성이란 무엇이며 그 근대성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을 이야기한다. 이후 작품은 신으로부터 탈피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고 인간 존엄에 다다를지, 그 속에서 마주한 세계의 부조리함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근대 세계에 던져진 개인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신(아버지)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그는 이제 자신과 타인을 욕망하는 걸 넘어서 타인(이데올로기)의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걸 내재화한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욕망의 소용돌이로 던져버리나, 그 속에서 개인을 지워 물화시켜 버리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기소외를 야기한다. 이런 와중에 국가라는 이름의 거대 괴물은 개인을 억압하고 규율화하기 시작하고, 리바이어던과 같은 국가 권력을 내재화한 계몽된 개인은 또 다른 이를 계몽시킨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소실점에 있는 질서를 타자에게 강제한다.
광인의 복화술과 텍스트의 오르가슴,
그것은 근대성의 폭력 하에
이데올로기의 욕망을 욕망하다
찢어진 '광인狂人' 과
그를 위한 저항의 도구로서의
텍스트인 문학의 관계
이 책은 제목부터 <세계문학 오디세이아> 인 만큼 다양한 문학을 레퍼런스로 하나 읽지 않은 작품들도 있어 모르는 작품이 언급될 때마다 구글링 하여 내용을 살펴보곤 했다. 언제고 읽어봐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 ‘무엇이 인간인가’" 였다. 만물의 척도를 인간으로 두는 인간중심사상에서 비롯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근대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인간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뀌어가는 게 흥미로웠다. AI가 도래하여 기존의 인간다움을 결정하던 정의들이 무용해진 시대, ‘이미’ 와 ‘아직’ 사이의 실존 속에서 인류는 무엇을 채워야 하고, 그 속에서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내 인생의 소실점에 무엇을 두고, 그 소실점으로 말미암아 외면해 온 것들이 있지 않은지, 이미 이루어낸 것들 속에서 아직은 요원하나 그럼에도 인간으로서의 삶 속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문학을 통해 되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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