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세계화는 국제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한 국가를 빈곤국이라는 약자의 위치로 전락시키는가. 이 책은 대항해시대에서 이어지는 제국주의와 산업혁명, 포디즘의 근대 시기에서 신자유주의 시대까지, 어떻게 각 선진국들이 다른 나라를 착취해서 부를 이루었는가를 정치 · 사회 · 문화적으로 연관시켜 풀어낸 이야기다.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효율성을 증진시켰다는 면에서 신화와 같이 언급되는 분업 체계가 인간을 부품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한 국가를 다른 국가의 발전 동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구 1 세계 국가들이 피착취국을 식민지 시절부터 정치 · 군사적으로 원자재 생산국의 위치에 묶어 헐값에 원자재를 사들이고, 공산품을 강매하듯 판매하는 것에서 이윤을 얻으면서, 국제 관계 속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명목적인 제국주의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초국적기업들이 그런 양상의 횡포를 부린다는 것과 국제기구의 유명무실함, 공정무역의 허상 등의 이야기를 세계사 연대기와 엮어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함께 세계화가 어떻게 각국의 젊은이들을 '아웃소싱' 하고 때론 사각지대에 내몰기까지 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건조한 비문학을 읽는 것이 좋다. 독서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책이 너무 어렵다고 한탄하는 학생을 다독이면서 나도 같이 읽을 테니 끝까지 읽어보자 했던 책이었다. 그게 한 달 전쯤이었는데. 별말 없는 거 보니 에세이를 잘 써서 제출한 것 같고, 나로선 바빠서 포디즘 파트 정도까지 읽고 중단했다가, 주말에 다시 완독 했다. 세계사의 흐름과 국제정치학 교양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은 책이다. 사례가 방대하고 주류에서 일러주지 않는 시각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이기에 교양서적으로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막연하게만 기억하고 있었던 전근대 은의 흐름과 향료 전쟁의 의미, 원자재 수출국에서 탈피의 중요성 등이 논의 쟁점으로써 재밌고 유익했다. 민영화 · 아웃소싱 얘기까지는 끄덕끄덕했는데 공정무역에 있어서도 대기업들이 점유한다는 점을 보고 다소 놀라기도 했다. 읽을수록 "싸워서 가난해진 게 아니라 가난했기에 싸운 것이다." 라는 한 아프리카 내전국 국민의 말이 인상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인간마저 부품으로 취급하며 전 세계에 아웃소싱시키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시대에 개인으로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은 연대를 희망으로 내어놓고 있지만 공정무역의 영역마저 자본이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막연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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